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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은 너네가 정권을 잃은지 10년이라는 얘기지?
Tracked from 마루날의 雜學辭典 삭제1997년 11월 21일을 아십니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얘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냄비근성에다가, 역사에 대한 기억상실증이라는 중병에 걸려있는 것이 사실인것 같다. 지금부터 딱 10년전에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고, 어디에 있었으며, 어떤 꿈을 꾸고 있었나? 아마도 나와 비슷한 연배 이상의 사람들은 그날이 무슨 날인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97년 나와 나의 대학동기들은 군대를 다녀와..
2007/11/21 11:14 -
외환위기 10년, 간도 쓸개도 빼준 외자유치는 정답이었나?
Tracked from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삭제[새사연 이슈해설] 외환위기 10년, 간도 쓸개도 빼준 외자유치는 정답이었나? 2007-01-05 2007년 올해는 정부수립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던 외환위기를 맞으며 IMF관리체계로 들어간 지 10년이 되는 해다. 외환...
2007/11/21 11:29 -
저주받은 세대, 60년말~70년초 출생자들
Tracked from backstreet internet zealot World 삭제뒷골목인터넷세상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 참 취업하기가 힘들다고 하지요. 소위 저주받은 세대, 어둠의 자식들이란 자괴감 섞인 용어들이 자주 사용되고 있답니다. 어제는 저녁 TV 뉴스시간에 대선 후보들의 취업에 대한 생각을 방송하였는데요 결국, 정리하자면 1.경제발전되면 그만큼 일자리 창출이 더 된다 2.중소기업을 육성하여 취업기회 창출한다 3.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복지 등 각종혜택의 차이를 줄여 중소기업을 활성화한다 아쉽게도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쉽..
2007/11/21 11:45 -
IMF 10주년(?), 10년 전의 나를 생각해보다
Tracked from 가눔의 일상다반사™ 삭제IMF, 그 날카로운 기억 10주년이라고 기념(?)하기엔 너무 씁쓸한 날입니다. 10년전 오늘, 누구 표현대로 하자면 김영삼정부가 IMF에게 무릎꿇고 돈을 빌려달라고 한 날이지요. 요즘 '잃어버린 10년' 운운 하는데 '잃어버린 10년' 이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로거뉴스에 올라온 글들을 읽어보니 참 슬픈 사연이 많네요. 문득 생각나서 저도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제게도 10년 전의 일은 참담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2007/11/21 11:57 -
에리카김 불발로 이득을 본 쪽은 이회창
Tracked from 615블로그연대 행동 블로그 삭제[나의 정치분석] 에리카김 불발로 이득을 본 쪽은 한나라당이 아니라 이회창이다! 한나라당은 에리카김이 기자회견을 나오지 않아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다고 한다. 노컷뉴스 -> 한나라당 "이보라씨 회견…결국 헛방" 그렇다면 정말 한나라당이 이득을 본것인가? 이회창 쪽은 이명박 쪽을 부패하다면서 공격의 도수를 높여왔고, 보수진영의 후보는 이회창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나라당의 당원들 지지자들도 지금 이회창쪽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는 상..
2007/11/21 11:59 -
10년전 IMF? IMF 10년째!!
Tracked from 단상(短想) by 낮은표현 삭제IMF가 10년 전의 이야기라는 말은 맞는 말이 아니다. IMF가 10년째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맞지 않을까? 10년전 나는 군대에 있었고, 부식이 줄어들고 이런것 외에는 별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실제 내게 IMF가 ...
2007/11/21 12:34 -
1987-2007 미국 휘발유 가격
Tracked from Gran Paradiso 삭제1987년부터 2007년까지 20년간, 미국의 센트/갤런 휘발유 가격을, 해당월 1일의 원/달러 환율로 환산했다. 다 만들고 나서 외환은행 사이트를 보다가 해당월의 평균 환율도 조회해 볼수 있다는 ...
2007/11/21 13:35 -
심상치 않은 경제상황..제2의 imf는 올 것인가?! -제1편 정부와 언론 부동산업계의 장미빛 꿈.
Tracked from 짠돌이의 생활경제이야기 삭제이 글 역시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니 이런 생각이 있구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절대 imf시대와 같은 외환위기가 오기를 바란다거나, 주식이나 부동산이 폭락하길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주식투자자이고그것도 리스크가 큰 데이트레이딩과 파생쪽을 주로하는,, 저희 부모님도 작은평수지만 강남에 아파트를 가지고 계십니다. 또한 경제위기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사람들이 얍삽한 투기꾼도, 개기름 좔좔 흐르는 졸부들도 아닌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서민들..
2007/11/21 13:44 -
IMF 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Tracked from ★─ 별과달의 이미지 ─★ 삭제그 때 IMF 가 있었지. 햇살이 따사롭던 어느 날 신문 방송 뉴스에는 온통 낯선 단어 IMF 들이었다. 한 달후 그 IMF 라는 낯선 알파벳이 처음으로 내 삶의 통로 파고 들었기에 나는 그 낯선 언어와의 인연을 냉...
2007/11/21 14:10 -
제2의 imf경고 4편- 건설업계 줄도산의 시작..
Tracked from 짠돌이의 생활경제이야기 삭제안녕하세요^^ 짠돌이입니다. 제가 지난달에 적었던 imf경고 2편 상식선의 한국경제 시나리오 에서 이런 글을 적은 적이있습니다. "지방건설업계부터 시작하여 올 여름이 지나면 줄도산이 이어 질겁니다. 그 작은 불씨를 시작으로 최소10년간은 꺼지지 않는 지옥불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다소 과장되게 적었지만 중견건설기업 세종건설을 시작으로하여 작금의 부동산관련기사제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부동산 침체→금융시장 혼란 '도미노' 우려 건설업계 부도 도미..
2007/11/21 14:36 -
제2의 imf경고 3편 - 이틀의 주가반등 남은건 캐폭락~~이명박후보는 신이 아닙니다.
Tracked from 짠돌이의 생활경제이야기 삭제이 글 역시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니 이런 생각이 있구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절대 imf시대와 같은 외환위기가 오기를 바란다거나, 주식이나 부동산이 폭락하길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주식투자자이고그것도 리스크가 큰 데이트레이딩과 파생쪽을 주로하는, 저희 부모님도 강남인 송파쪽 아파트에 살고 계십니다. 또한 경제위기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사람들이 제가 혐오하는 얍삽한 투기꾼도, 개기름 좔좔 흐르는 졸부들도 아닌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2007/11/21 14:36 -
97년 IMF 체제에 맞서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하여
Tracked from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삭제[IMF 10년, 한국사회를 삼킨 97년 체제] 97년 IMF 체제에 맞서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하여 2007-01-30 올해는 87년 6월 항쟁 스무 돌이 되는 해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절차적 민주주의는 대부분 달성되었으니 ...
2007/11/21 14:37 -
닫히는 문에 필사적으로 들어갔던 10년전 - IMF
Tracked from 드러커 아저씨 도와줘요 삭제1996년 10월 제때 졸업을 못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예감은 했으나 막상 이수학점을 다 계산해보니 2학점이 부족했다.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했다. 12월 방학하자 마자 경기도 북부 지역에 있는 장흥유원지의 공사장으로 갔다. 먹여주고 재워준다고 하길래 인테리어 아르바이트를 했다.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건물 외벽을 인테리어 하는 것이었다. 영문과 나와 무슨 건축 노가다냐고 하겠지만 그게 단가가 제일 쎄고 마음 편했다. 몇년전 거기를..
2007/11/21 15:39 -
세상을 구조적으로 보기 시작하다
Tracked from 기동청년 삭제IMF가 오늘로서 정확히 10주년이라네요. 저는 97년 이날.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고등학교는 뺑뺑이 돌려서 들어간 평준화 지역의 사립고등학교였죠. 처음엔 IMF 가 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큰 사건이 ...
2007/11/21 15:54 -
IMF 며칠전, 국회에선 어떤 일이? - 망할만 했다
Tracked from 미디어 한글로 (media.hangulo.net) 삭제IMF 며칠전, 국회에선 어떤 일이? 국회 속기록을 뒤진다 1997년 11월 21일, IMF 구제금융시대 개막 1997년 11월 18일, 국회 본회의 풍경 1997년 11월 18일, IMF 구제금융시대 개막 3일전. 국회에서는 제185회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가 열렸다. IMF 소식이 이미 전해진 시점. 국가가 망하는 그 순간. 과연 국회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1997년의 속기록[회의록]은 텍스트로 저장되지 않고 이미지로만 되어 있어서 옮..
2007/11/21 16:45 -
IMF 10년=한나라당 10년 이젠 지겹다...
Tracked from 615블로그연대 행동블로그 삭제1997년 11월 21일 국가부도사태.. 내가 제일 처음 피부로 느꼈던 IMF의 힘은 바로 라면이었다! 라면 값이 갑자기 두배로 뛴 것이다. 자취하던 시절, 동전 몇개에 브루스타와 냄비만 있으면 간식같은 라면끼니는 별거 아니었는데, 갑자기 라면 값이 올라 당황했던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대량해고와 실업사태가 오면서 라면 매출이 두배 뛰었다고 한다. 어느날, 취업을 준비하던 선배들에게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원래..
2007/11/21 19:04 -
IMF라는 용어사용에 대한 유감
Tracked from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선 삭제아시아 금융위기(Asia Financial Crisis)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어서 각종 미디어에서 그리고 블로거분들이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IMF발생이라는 이상한 용어를 동원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디어가 아시아 금융위기를 대중에서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오용해서 사용한 말이긴 하겠으나, 제가 듣기에는 IMF가 마치 우리나라 금융위기를 일으킨 것 같은 착각을..
2007/11/23 08:56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엽기적인 잡지사 시절 이야기....매우 궁금 합니다^^
2007/11/21 09:44하핫.. 개인적인 관심이신가요?
2007/11/21 10:16엽기적인 잡지사.. -.ㅡㅋ 설마 여의도 시절은 아니리라 믿지만, 여의도 이야기면 하지 맙시다. 그것도 악몽이오~
2007/11/21 10:05ㅋㅋ.. 그 시절 이전의 더 엽기적인 잡지사가 있었오..ㅋㅋ.. 여의도는 두 번째 잡지사였죠..ㅠ,.ㅠ
2007/11/21 15:02그만님 글 덕분에 갑자기 그때 당시가 생각나네요.
2007/11/21 10:2496년, 97년 당시 특히나 외부 영향에 큰 부산에 살고 있었는지라,
(거의 대부분이 생산, 무역업체들이니)
부산은 IMF 여파가 좀 일찍 찾아온 편이었습니다.
외환위기라고 하기 전 부터 쓰러지는 회사들이 한 둘이 아니었지요.
알바겸 직장겸 해서 편집디자인 쪽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납품이 완료되거나 완성된 홍보물, 책자 등
거의 2천만원 넘게 거래처들에게서 떼이고 망했었습니다;;
(사실 거의 망하다 시피해서 못 주는 것이긴 했지만요 -_-;;)
밥벌이할 것 없나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계기가 되었지요.
올라와서 원고 대필도 많이하고 -_-;; 그때부터 인터넷 페이지들의 디자인을 시작했었으니;;
그 후 이야기야, 뭐 어쩌다보니
그당시 가장 잘 나간다는 웹에이전시 업계에 있었고,
요새는 가장 잘 나간다는 인터넷포탈 업계에 있네요. -_-;;
능력은 저도 잘 모르겠지만, 정말 직장운(?)은 있나 봅니다.
살아가다보면 정말 어려웠던 시절, 누구나 힘들었던 시절을 잊어버릴 때가 많은데요. 가끔 그때 시절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죠..^^ 오늘 같은 날이 그날이네요..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그때 시절로 돌아가라면 솔직히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쿨럭 ㅠ,.ㅠ 저는 '불행중 다행' 족속이죠..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요..ㅋㅋ
2007/11/21 15:04지금의 취업시장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2007/11/21 11:15저도 백번정도 면접을 보다..계속 떨어지고 이대로는 도저히 못살
것 같아 저도 보험회사에서 일한지 3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글쎄요..
이 일을 하려면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번다..그런 단순한 목표가 아닌
나는 이 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다..등등의..^^
요즘 많이 힘들다고 하더군요. 무슨 일이든 적성에 맞고 자신의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인정하는 큰 성공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인정하는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홧팅이에요~ 큰바위얼굴님~^^(아, 그리고 혹시라도 본문에 보험설계사 일을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 의도는 절대 아니에요..^^ 내용에 사족을 붙였습니다.)
2007/11/21 15:06저는 IMF시절 창업자금의 대출금 이율이 높아지는 바람에 안해본 일이 없었습니다...정말 눈물을 머금고 아무도 모르게 심지어 남편도 모르게 가정도우미를 비롯해서 작은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주부알바를 했습니다...겨우겨우 두배로 오른 이자를 메꾸면서 지난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이제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려니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제대로 영어 실력이 없다구 변변히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알바를 하네요...대학까지 나와서 알바라니.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었요.그러나 딸한테 미안해서 왜 좋은 곳에 취직도 못하냐구 따져 묻지도 못하겠더라구요.제대로 학원한번 보내지 못하고 영어연수한번 보내지 못한 어미가 어찌 영어실력이 탁월하지 못하다 탓하겠어요.ㅠㅠ..이제 좋은시절이 왔음 해요.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구나 일할수 있는 그런 좋은 나라...ㅎㅎ
2007/11/21 11:33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생각보다 맘대로 되지도 않죠. 이율 하니 그 당시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자 인상률이 생각나는군요.. 캬~ 정말 어이가 없었죠. 지금 카드 이자율을 은행들이 거둬들였으니.. 문인숙님 말씀대로 앞으로는 더 나은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2007/11/21 15:08IMF 구제금융받았을때 저는 은행에 취업한 상태에서 군대에 있었죠. 상고를 졸업하고 지금은 퇴출된 은행에 다니다가 군에 입대했습니다. 병장진급하고 얼마후 직장이 퇴출되는 장면을 저녁뉴스로 군대에서 접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구요. 얼마후 제대하고 나오니 퇴직금이 안 나오고 직장조합에 가입한 돈도 모조리 날렸습니다. 취업하려해도 고졸인데다 망한 직장다닌 경력은 경력으로 인정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2007/11/21 11:44대학은 나와야겠다는 일념으로 새벽5시부터 일어나서 공부하고 오후3시부터 새벽1시까지 술질에서 서빙하면서 일했습니다. 그누구보다도 힘든 생활을 2년 했습니다. 결국 대학은 들어왔고 졸업하고 조그마한 사업장을 꾸러서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시절 힘들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조금씩 서로 돕고 이해하며 살아야죠. 어려운 시절만큼이나 그 힘든 파고는 넘는 자들은 값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만님 엽기적인 잡지사기자 이야기 듣고 싶네요.
황당한 일이 실재했군요. 스머프님도 힘내시구요. 더 좋은 날들만 있길 바랍니다. 잡지사 이야기.. 이런 분위기라면 당근 해야겠네요..ㅋㅋ
2007/11/21 15:10그땐 그랬습니다.
2007/11/21 11:48단지 97년11월 IMF사태가 나고, 막연히 졸업하면 그래도 취직은 되겠지 하고 98년2월에 졸업하고나니...흠...백수시작...
나 자신을 낮추는 계기가 되고 날 돌아보는 계기가 된...
한편으론 누군 군대 면제라, 6개월 방위라, 18개월 방위라 한창 경기좋을때 졸업해서 취직다했는데..나는 왜 꽉 채워 군대갔다와서 백수가 된건가 싶기도 하고..
취업원서받기도 어렵고 면접보고 출근하는 줄 알았는데 그 회사 부도나서 출근도 못 해보고...
더 웃긴건 그 다음해던가 경기가 풀리면서 증권회사에 원서 받으러 갔더니 기졸업자라 원서교부조차 안된다고 하더이다.
그래서 한소리 했소..작년에 당신들 IMF라고 신규공개채용 안했지 않느냐고..그러더이다...그건 그때 상황이고..라고..
그렇게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거다...
많이 힘들었던 시절을 겪으면서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 '차별적인 사회 구조'이겠죠. 이에 대해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생기게 될지 아니면 좌절하고 한탄으로 끝내게 될지는 처음 생각과 많이 다르게 됩니다. 저도 가끔 '그럼 그렇지' '그럴 수밖에 없지 뭐'라는 패배의식에 젖어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 혼자 살아가고 말 세상도 아니고 아직도 더 많은 날들을 살아야 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의지도 생기지 않을까요?
2007/11/22 18:28제일 피해본 ....학번은 92학번.................결혼도 연령 평균33세.............
2007/11/21 11:4991, 92, 93, 94.... 다들 힘들죠.. 일단 IMF를 정면으로 맞닥뜨렸던 91, 94학번이 흔히 저주받은 학번이라고 하죠. 요즘 사람들도 많이 하는 이야기죠.. 그래도 꿋꿋하게 버텨 보는 거죠~^^
2007/11/22 18:29저희는 집두 날라가고 돈 때문에 죽을뻔 했죠 가장이 40중반나이 아이들 가르키는게 정말 꿈 같았습니다 물론 몸까지 아프구요 국민학생 고등학생 이었던 아이들이 대학졸업하고 취업했고요 작은아이는 지금대학 3학년 취업준비중 연수다 뭐다 엄두도 못냈지만 나름 대로 긴장된 대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힘들었던 시절이 없더라면 아이들이 지금 보다 꼭 잘됐을 거라는 보장두 없구요 집 사는 것은 꿈도 못꾸구요 아직두 IMF 잔민으로 살구 있습니다 사실 나이 드신분들이 더 절망적 입니다 겨우 아이들 가르치느라 노후준비 전혀 못했거든요 연세 드신분들은 6.25 보다 낫다고 하시구요 지금이 힘들다 하시면 우리세대는 IMF 때보다 낫다 하지만 개인마다 느끼는게 다 다르겠죠? 그런일들 다시는 안 일어나게 열심히 살아야죠
2007/11/21 12:07정말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졌었군요. moon님 힘내시구요~~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으셔서 꼭 성공하실 겁니다.~
2007/11/22 18:32지금 보수꼴통들은 지금이 IMF때보다 살기 더 어렵다고 하는데... 사실일까요? 저도 IMF 꽤나 혹독하게 보냈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살기 좋은데요..
2007/11/21 11:56당시 기름값이 없어서 집에서 중무장하고 살았거든요.
머 당시에도 그다지 불편함 없이 살았고 지금도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죠..^^
2007/11/22 18:321990년에 대학입학해서 1998년 2월에 졸업했습니다. 군대다녀오고 4학년 1학기 마치고 영어해보겠다고 어학연수 1년다녀왔더니 IMF라고 하더군요. 국가부도사태에 어떤 취업도 되지 않았고 그 때 졸업했던 친구들 중 상당수가 대학원, 학원선생 또는 공무원시험으로 모두 내몰렸죠.. 당시 취업현실이야 아마 말안해도 알 듯 싶습니다. 지방국립대 졸업, 평점 B0, 토익 그럭저럭 때문에 저 역시 취업포기 상태였죠.. 자폐 수준이 되었고 이력서 넣어도 면접 기회조차 없었고 .. 집에 손 벌리기도 미안했고.. 그래서 시골집에 내려가서 한 4개월을 하늘쳐다보고 살았답니다. (1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땐 농사를 짓고 살아야되나라는 생각을 할만큼 암담했죠.. 그러다가 천우신조로 LG그룹 계열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이 역시도 스토리가 깁니다만..) 지금은 과장 2년차로 생활하고 있답니다. 그 때 입사했던 친구들의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나락, 인생의 막장에서 겨우 줄을 잡았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직장생활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글을 남기지만.. 멀쩡하고 공부 열심히 했던 그 때 졸업했던 친구들 그리고 동기들이..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기회를 박탈당했던것을 생각하면..
2007/11/21 11:57요즘직장생활하면 개인주의가 사실 많죠.. 그렇지만 전 항상 이렇게 생각한답니다. 나라가 살아야 기업도 살고 기업이 살아야 개인도 살수 있다고요.. 어렵지 않고 고통받지 않고 어려움속에 처해 보지 않으면 현재의 행복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잘 모르죠..
전 현재의 제 인생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운이 좋았다"라고 표현한답니다. 제 삶이 제가 잘나서 그런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아주 작은 운이 좋았다고..
그 때 졸업했거나 또 그 때 어려움을 겪었던 많은 분들.. 혹시 지금은 어렵더라도 아마.. 여러분들이 겪었던 그 고통이 인생의 밑거름으로 먼 미래에 충분히 보상되리라 생각합니다..
- IMF 때 졸업했던 친구가.
결국 지금은 잘 풀리시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저도 '운'이 좋았어요..^^ 늘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ㅋㅋ
2007/11/22 18:33개인사업하다가 쪽빡찿죠
2007/11/21 12:00고금리에 못버티고 아직도 신불자.ㅠㅠ
98년여름 계곡마다 사업에 실패한 개인들 빨래비누하나와 비닐텐트치고 라면이없어서 산에풀뿌리케먹더군요..
정경유착과 달러빚으로 과잉경기부양이 원인이었죠^^
아.. 아직도 도둑님(?)에게는 IMF가 진행형이시군요. 힘내시기 바랍니다.
2007/11/22 18:34직접적인 피해자 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수능보고 대학 원서쓰고 고생했죠... 취직이 잘되고 학비가 싼 교대 점수가 높아져(이전에도 높았지만 아이엠에프 이후에는 확실하게 상류권 대학교로 점수가 올라갔으니...ㅡ.ㅡ) 낙방을 했죠...
2007/11/21 12:04고등학교 3년 동안 안전하게 들어갈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예상합격점수보다 30점 이상 올라갔으니...
당시를 겪었던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였죠. 사실 가해자는 우리 사회가 쌓아 놓았던 모든 불합리성이 경제의 부조화를 만들었고 그것이 일순간에 내외적 요인에 의해 불거져 나왔던 것으로 봅니다. 어쨌든 좀더 힘내서 살자구요~
2007/11/22 18:3597년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고 운이 좋아 7월 발령도 났었죠. 시집갈 밑천 만드느라 40만원씩 적금 넣었는데 그해 말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98년 IMF로 임금 삭감- 적금 넣고 나면 차비도 모자라 마음 고생하던게 생각납니다. 이른 새벽에나 있는 비둘기 타기 위해 남보다 1시간 넘게 일찍 출근, 1시간 넘게 일찍 퇴근하는 생활을 했었지요.
2007/11/21 12:06그래도 그 당시엔 직장있다고 모두들 절 부러워 했던 것 같습니다.
불행은 어깨동무하고 온다고 하던가요.. 정말 힘든 시절을 겪으셨군요. 그래도 자기 만족에 대한 깨달음을 갖고 사시는 것 같아서 부럽네요.
2007/11/22 18:36그만은 -> 그 많은 - _-;
2007/11/21 12:09IMF 때가 아닌 현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만,
누구나 사정은 다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그 사정이 누가 더힘드니 안힘드니 할 수 없는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요한 건 그걸 딛고 일어났느냐 못일어났느냐 하는거죠,
엽기적인 잡지사라, 궁금해지는군요 ^^
블로그 주인장 이름이 그만이라서
2007/11/21 13:44그 많은X 그만은O
대신 답해주셨네요. 글에 등장하는 '그만'은 제 필명이랍니다.^^; 헷갈리셨다면 죄송~
2007/11/22 18:37엽기적인 잡지사 조만간 올려볼께요..ㅋㅋ
역시 다음 얘기 궁금~ ^^
2007/11/21 12:10ㅎㅎ.. '엽기'에 다들 낚이신 건 아닐런지.. ㅋㅋ
2007/11/22 18:37대학교 동기들이 도시락을 싸고 다녔다.
2007/11/21 12:21도시락.. 그랬죠. 소비가 급속도로 축소되면서 대부분의 영세 자영업자들이 나락에 빠져들었고 경제의 양극화는 점차 심해졌죠.
2007/11/22 18:38님이 겪으신 그고통은 인제 아랫세대인 80년~90년생들이 그대로
2007/11/21 12:24물려받겠군요ㅜㅜ
우리사회는 언제쯤 변할수있을까요??
굳이 수평 비교는 힘들겠지만 지금 청년 취업난이 고착화되고 구조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상념에 빠지게 됩니다.
2007/11/22 18:38그때가 스물여섯이군요. 많이 지났네요. 지금이야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잘크고 뭐 돈이없어 그렇지 재미나게 살고 있네요.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처참했더랍니다.
2007/11/21 12:29잘나가던회사. 흑자부도내고 사장이 사라진이후로 회사에 차압들어오고 그걸 직원끼리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죠. 그렇게 회사에서 짤린(?)이후로 정신을 차려보니 봄이 되었더군요. 그봄은 아버지의 환갑잔치가 있었죠. 통장에는 한푼의 돈이 없더이다.
별수 없었죠. 귀하게 모아놓은 수동카메라, 망원렌즈, CD-RW(이거 당시에는 신품은 120만원, 중고도 80만원)등등 모든걸 내다 팔아버렸죠. 그돈으로 형제들과 조촐하게나마 성의표시를 할수 있었죠. 그러고나니 이젠 정말 빈털털이. 이래선 안되겠다싶어 전 직장동료와 의기투합. 장사를 조그마하게 시작했었죠. 그나마 얼마 안가 말아먹고는 기술을 배우려 모형비행기를 만드는곳에서 일년을 골방생활했죠. 그렇게 어렵게 나온 비행기가 일년에 한두대도 안나가는걸 알고는 퇴사. 당시 붐을 일으키던 컴퓨터관련 쇼핑몰을 차렸고. 쇼핑몰이 잘 안되니 알바로 투잡을하며 생활비를 벌었죠. 그러다가 세컨잡이 본업이되어버리고 다시그게 연결되어서 지금은 조그맣게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간혹 생각합니다. IMF가 아니였다면 그회사에서 더 많은것을 배우며 지금도 나녔을것 같기도하고. 오히려 그때 야생(?)에버려진것이 다행스러운것 같기도합니다. 하지만 야생에 버려진덕분에 사실 전 할수 있는일이 많아요.
컴퓨터프로그래머(C,JAVA,VB),웹프로그래밍(PHP,MYSQL,FLASH),모형항공기제작 심지어는 한국통신의 전화가설도 할줄 안다죠ㅋㅋ. 역시나 똥통에 뒹굴어도 살아있는게 낫다고. 어떻게든 치고나온덕분에 지금은 하루한번은 웃을일 있이 살고 있네요. 머 야생에서 얻은 저의 자산을 아들에게 물려주 방도를 찾으면서말이죠.-사실지나고나니 웃는거지, 당시에는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건지 몰랐었죠. 머 저세상 생각도 해보고. 하지만 뒤돌아보니 좋더라는 일단 살아야아는거겠죠.
처참한 시절을 거쳐 지금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사시는 모습에 저도 많이 힘이 됩니다. 우리 모두 이럴 때는 IMF의 수혜자였군요.^^
2007/11/22 18:39어떻게 보면 IMF는 조중동 책임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IMF터지기 직전까지도 정치권력에 군림할려고 우리나라 경제 아무문제 없다고 한게 가장큰 문제..그들이 정말 몰랐을 까요? 정말 우리나라 언론들 문제 엄청 많음..
2007/11/21 12:38IMF 이후 각 언론사들 역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경쟁적으로 경제섹션을 마련하고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과 전문적인 경제 소식을 전달해주겠다던 강한 의지를 보였죠.
2007/11/22 18:40지금은? 갸우뚱~^^
그때 전 초딩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건설쪽에 몸담으셨는데 점점 기울어저서(도박도 했지만.) 집안이 갈수록 싸늘해졌습니다. 덕분에 집 전세 올려달라는 거 못 해주고 반지하로 이사갔는데 여름엔 송충이, 귀뚜라미가 우릴 반겨주었습니다. 장마철엔 창고에 물이 들어가기도 했죠. 그리고 문화생활비(ex 영화관이라든가)는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화장실도 너무 작아 샤워도 앉아서 해결해야 했는데 어떻게 여차저차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가 노력하여 지금은 방 3개 짜리 집에서 삽니다. 더 이상 쪼그려서 샤워하지 않아요. 무능력한 아버지는 중학교 때 집을 나가 부계 사촌들에게 간헐적으로 소식을 듣습니다. 철들고 나니까 기명사미가 싫어지더라구요. ㅆㅂㄻ
2007/11/21 12:52아 난감했던 시절을 거치셨군요. 그런 어려움에 대한 경험이 오히려 생존력을 높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ㅣ
2007/11/22 18:41지옥이었죠... 98년초에 쫄딱망해서 집까지 팔아먹고 김대중정부때 빛탕감하며 살았고 이제서야 예금하면서 산답니다. 그런데 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이라면서 표구걸을 하고있네요 ...
2007/11/21 12:59맞아요. 지옥이었죠. 나라가 망하는줄만 알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앞이 캄캄했죠. 당시 책임자들은 여전히 잘 산다고 하대요.. 세상 참~^^
2007/11/22 18:42좋은 글이네요.
2007/11/21 13:00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7/11/22 18:42저는 97년 여름 운좋게도 지금은 망해버린 대우그룹 계열사에 합격했습니다. 그 어려운 시절을 (짧았지만) 상대적으로 편하게 지낸탓에 그만님처럼 많은 배움의 시기를 갖질 못했나 봅니다.
2007/11/21 13:05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다행이네요. 뭐 다 같이 고생하자는 식은 더 어이가 없죠. 고통분담도 차별이 있다는 것을 우린 그 때 깨달았거든요. 일단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결코 겪지 않았을 위기였죠.
2007/11/22 18:44아 정말 그땐 다들 어려웠네요.
2007/11/21 13:05우리아버지는 교사라 짤리는 어려움없이 그럭저럭 먹고 지내왔음.
친구아버지들 보면 회사에서 그냥 나오거나 짤리거나 퇴직금으로 가게 차리고 그랬었는데..금모으기 운동할때도 갖다내놨었죠.
뭐.. 다행이네요. ^^ 어려웠던 시절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 시절이 반드시 해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2007/11/22 18:44생각만해도..여기 쓰신분들의 사연만 봐도 눈물이 나는 군요..
2007/11/21 13:09잃어버린 10년이라..수구세력은 50년을 망가트려놓고 그나마
남은 10년마저 이렇게 표현하더군요.분노하고...분노합니다
아.. 저도 .. 정말 가슴이 미어지더라구요..
2007/11/22 18:45그때 생각하니까 지금은 웃음만 나네요.
2007/11/21 13:11회사다니면서 늦깍이 대학생이 되었더니만 바로 IMF 터졌었죠. 회사는 월차내고 그다음날 출근하니 부도나 있더군요.
집안사정상 벌어 다녀야 하는데 대학을 포기해야될 기로에 섰었지만 겨우겨우 졸업은 할 수 있었답니다.
회사도 겨우 구해서 직장생활하면서 저녁에 눈치보며 야간대가고,,,
참,,,그 시절을 잊고 살았네요.
지금도 정신없이 살기는 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젊음이 있었기에 헤쳐나갔던거같아요. 이제는 전공으로 먹고사는데요. 뭐,,큰회사는 아니지만 작고 알찬회사들어와서 열심히 살고 있답니다.
결혼도 했고 아들녀석도 하나 있고요..
부모한테 받은것도 없고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지만
귀여운 아들과 우직한 남편과 함께 그래도 일상이 행복하답니다.(아참, 저는 여자예요.ㅋㅋ)
그런걸 보면 돈과 행복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거같아요.
님의 말씀처럼 돈과 행복이 비례하진 않지만 돈이 너무 없어도 너무 많아도 문제라는 것을 그때 깨닫긴 했습니다. ^^ 어쨌든 지금 좋은 모습으로 살고 계신다니 너무 좋네요.
2007/11/22 18:46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던 어느날 밤에 어머니가 왠 형(6학년 정도?)을 데려와 제 방에서 재우시더라구요. 전 안방에서 자고... 자고나서 어머니한테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어머니 친구분 아들인데 자영업하던 그 집 아저씨가 부도가 나서 가족이 거의 공중분해됐다고 했나.. 그 형도 노숙생활한다고, 전철역에서 만났는데 잘 곳 없다고 해서 너무 안쓰러워서 데려왔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경제위기'라는 단어가 제일 실감이 났던 때군요.
2007/11/21 13:18그리고 98년 겨울엔 어머니가 택시기사랑 대화나누는데,
'금모으기 그런거, 있는놈들은 더 안내고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만 내라 그런다'고 분통 터뜨리시는데.. ^^
저는 학교에서 배운대로 '엄마 그래도 국민이면 내야돼~'했다가 야단맞은 기억이..
지금은 어머니 말씀이 백배 공감된답니다.
작년에 지자체장 첨으로 투표했고 올해 대통령 처음 찍는데
과연 누굴 찍을까요오~?
아.. 그랬나요.. 그 친구는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2007/11/22 18:46저도 막 군 제대해서 막막하던 시절이었죠,,
2007/11/21 13:18그전만해도 엘지반도체 인턴에 입사추천장에 지방대라도
취직걱정 안했는데 제대하고 나니 다들 영어다 공무원시험들 준비하고, 나름대로 부모님이 안정적인 직업이라 큰 걱정없이 파고를 넘
었고, 어릴때부터 근검절약에 항상 어렵게 살아온지라,,
개인적으로 좋은직장은 아니지만 대학졸업전 취업해서 이제 과장이네요,,
취업의 양극화의 극단을 달렸던 시절이었죠. 고관대작 자식들이 더 취직이 잘 되던 그 때였으니까요.^^
2007/11/22 18:47갑자기 97년 12월이 생각나네요...대한생명,쌍용,LG 합격을 통지 받고도 입사못해서 전전긍긍하던...그래도 다행히 98년 3월에 우여곡절끝에 취직을 해서 아직까지 댕기네요...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참 많이들 고생하셨죠...내년이면 10년짜리 적금도 타고...이글을 보니까 감회가 새롭네요...역경을 이겨냈다는 생각도 들고...착찹한 마음도 들고...
2007/11/21 13:22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기분이 영~
2007/11/22 18:47음.. 그때 졸업전,, 마지막 학기.. 98년도에 졸업 했으니 말이죠.. 전 간호과라 취업이 잘 되는 과였는데도 그땐 정말 암울했어요.. 그러니 다른 과는 더 했겠죠.. 좋은데 취직되었던 애들도 합격취소받고 , 그랬으니까요,,수많은 이력서를 썼던 기억이 나네요.. 사람들이 자살을 왜 하는지 이해가 갈정도로 그땐 암울했어요,, 98년 8월에야 겨우 그것도 아주 작은 병원에 취업해서,, 월급이 밀리고,, 언제적 월급이었는지도 모르게.. 3달정도 밀리고 그랬으니까,, 아주 쥐꼬리 만한 월급에,, 밤근무를 10일을 넘게 하면서,, 힘들게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넘 힘들고 우울했던 시기.. ㅎㅎㅎ 술 먹으면 넘 짜증나서 펑펑 울었던 기억도 나네요..
2007/11/21 13:26저는 신방과였는데요... 엽기 잡지사에서 집에 갈 차비가 없어서 한 달에 닷새 정도 빨래하려고 집에 들어갔었죠..^^
2007/11/22 18:48뭉클 가슴에 다가오는 제목입니다. 뭘로 입사하든 다 정규직이었던 그때... IMF이후... 우리는 비정규직. 파견직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월급여 55만원(세액공제후) 이게 무슨 금융사 월급인지... 당시 운좋게 정규직으로 입사한 친구의 연봉 1800이었던 그때... 급여가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는 아닐거라는 하나의 희망으로 그돈으로 적금넣었던 기억에 눈물이 나려하네요... 게다가 정규직 사원들 정리해고를 앞두고, 비정규직 직원들을 무작위 퇴사명령 했던 그때, 어려서 그땐 항의라는 것도 몰랐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직장생활 딱 10년 되었네요...그 폐단은 지금까지도 지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소위 금융사라고 하는 은행,카드사에서... 적은 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되, 절대 장래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얄팍한 계산이었던거죠. 기업은 살아남기 위한것이라 하지만... 살아남은 후에도 달라진것 없더군요. 더 웃긴건... 파견직으로 2년, 잘 근무한 직원에 대한 특혜로 자유계약직? 아님 직계약직? 뭐 이런 명칭을 제시하면서 정규직의 문은 열어주질 않고 있습니다.
2007/11/21 13:27생뚱맞은 기업들의 노동 유연성 요구를 그대로 다 들어주다가 지금 더 심각한 문제가 되어버렸죠. 사회적인 비용이 아마 더 크게 발생되고 있을 겁니다. 너무 급한 마음에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경제가 되었죠. 재벌집 자식들은 그때 사치를 '소비의 미덕'이라며 아예 대놓고 사치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2007/11/22 18:50아..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수능 두번치룬 수능 첫세대. 94년 대학입학. 98년 대학졸업. 여자라서. 이렇네요 그 당시에 갑자기 생겨난 파이낸스에 취업해서(그래도 주위에선 일찍 취업되어서 무지 부러워했죠) 영업부터. 온갖일을 다 했네요... 그리곤. 도산....첨부터 금융업에 취업해서인지. 아직까지 금융권에 있습니다.. 은행에 있지만. 그것도 계약직... 지금 계약직은 그래도, 복지나. 여러가지 대우 받지만. 이때까지 몇년을 기다린 상태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로에 섰습니다. 제가 그리 잘 나지 못해서. 이렇게 있는것도 있겠지만.... 윗 글들을 읽어보니. 시대적 상황이란것도 참 무시못하겟고... 여러사람들의 댓글에 공감이 마니 됩니다...
2007/11/21 13:2710년동안. 빚보증으로 집안 몰락해서. 우리집식구 저 빼고 모두다 금융불량 거래자 되고. 뒤늦게 결혼해서. 이제 돌된 아이 하나 있어요..모두들 화이팅입니다..잊고 있었습니다.. 10년이란걸....
여자분들이 아마 더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결국 지금 잘 지내고 계신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2007/11/22 18:51위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여러가지 어우러진 요지경속처럼 구구절절 사연이 많네요.. 그만님의 잡지사 생활도 궁금해집니다...
2007/11/21 13:30저는 그당시에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서 몇달치 급여도 못받고 나온 후에..지금은 사라졌지만 국민연금 환급받고, 실업급여 받으면서 이것저것 배우느라 정신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임금 체불.. 뭐 다들 요지경 세상 속에 등 떠밀려 살던 시기였죠..
2007/11/24 21:39전 당시 상병 단지 얼마 안되었을때네요 ㅎㅎ 군대 아들놈 아버님이 퇴직하시고 많은 일이 있었죠 전 그렇게 98년도 전역하고 복학... 졸업 직전에 대학원 가려다가 아버지께 퇴짜 맞았죠^^ (지금은 사업을 접었지만) 모 경제신문사 IT학원에서 무료 프로그래밍도 배우고... 조그만 잡지사도 들어갔습니다만 천성이 게으른건지 2주에 한 3~4일씩 있는 야근이 싫어서(격주잡지) 한달반하고 나왔습니다. 그뒤로 공무원 준비하다가 마침 현재 다니는 회사 공채를 보고 쳐서 들어왔고 지금은 만족하면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몇달전 결혼도 하구요^^
2007/11/21 13:30어찌보면 예젼된 IMF엿습니다.
2007/11/21 13:35전두환때까지는 국민들이 관강을 못햇고 정부서 달러 관리를 햇으니까요 노태우가 들어서면서 전국민 해외여햏 자유화..
그당시 외국 못나가면 바보에 아주 가난하단 소릴들을때엿으니까요.
무역수지가 흑자여도 관광으로 나가는 달러가 엄청낫을겁니다,
다들 설마 이럴수 잇을까 햇겟죠
위 어느분이 과도한 경기부양이라 하시는데 그건 아닙니다.
외국에 소비하는 달러가 엄청낫다는거죠
그당시 2집에 한집꼴로 해외여행가고 햇던것으로 알고잇습니다
암튼 국가의 부도는 전국민의 문제 엿고 전국민이 책임질일엇습니다
그런데 요즘 애들 전부 영삼이 잘못인양 말하더군요
지금 다시 그때처럼 외자나 모든게 가까워진다는군요
하지만 IMF가 오지 않는것은 이미 격엇기때문에 안오는것뿐입니다
그시절 다들 고생햇으니 아마 잘들아시리라봅니다.,
힘든여정도 잇고 좋은 여정도 잇고 그래서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가 소중한것이죠..
당시 영삼이 책임이 없었다고 절대 할 수 없죠.. 세계화 부르짖으면서 달러끌어들이고 물론 국민도 문제였지만 그러한 상황을 묵과하고 숨기기에 급급했던 정부와 언론이 크나큰 문제였습니다. 국민들이 정부가 그렇게 해외여행을 부추기지 않고, 우리 어렵다고만 했어도 그리 펑펑 써댔을까요? 더욱이 IMf를 통해 전두환을 거슬러 올라가 박정희 시절부터 쭈욱 이어진 정격유착의 부작용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구요. 대한민국 총체적인 구조화의 문제가 하나둘 드러나게 된 계기가 나라가 망할 직전에 가서였다니 그것이 더 소름끼칩니다. 지금도 우린 언론에 조종당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구요.. 진정으로 이번엔 청렴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자를 뽑아 제2의 IMF를 맞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국민들은 죄다 도산하고 어려웠지만 정치인. 재벌들은 어땠습니까? 그들은 그때도 뒷구녕으로 다 해쳐먹었습니다. 절대 잊지못합니다. 이번에 잃어버린 10년을 써대는 파렴치한 조중동과 딴날당에 치가 떨립니다. 누구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리돌아왔는데요!! 지금도 벌써 건설거품. 부동산거품을 부치기는 누군가가 있기에 국민들은 (특히 현 대학생들..) 뭣모르고 현혹되어 가고만 있기에 걱정스럽습니다. 어느사이엔가 조중동이 휘갈기는 기사에 세뇌되어 <잃어버린 10년>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고 써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 경험학습이란 무엇인가 되묻고 싶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가 있는디 되묻고 싶습니다. 당시 IMF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참 살만해 진겁니다. 그 당시 발생한 비정규직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크나큰 문제이지요. 비정규직을 해결할 만한 대안을 가진 후보를 이번 대선에서 뽑아야 합니다.
2007/11/21 16:53난... 어렷을떄...인데..ㅋ
2007/11/21 13:36아버지 사업 부도나고... 집도 팔고..
주택에서 좁은 빌라같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로 이사가고
보일러도 기름값비싸서 잘 안떄고...
어머니도 갑자기 미용배우시더니 미용실 하시구...
그런 기억들밖에 없네요..
하..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이네요.. 당시 전 하사관(지금은 부사관)이었으니 직업군인이었죠. 하지만 전역지원을 한 상태라 바로 다음해에 전역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전역취소를 할 수도 있었지만..나름 그땐 젊고 패기도 있어서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취소 하지 않았고, 전역을 했네요. 그리고 남은 대학 학기를 마치려는데 하핫.. 굴지의 H 자동차 서비스 다니시던 아버지께서 명퇴를 하시더군요. 다들 대기업에 계셨으니 퇴직금이나 명퇴금이 클것이라고 생각했고, 저 역시 그럴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금액을 밝힐 순 없지만 정말 몇달치 생활비..밖에..
2007/11/21 13:37취업.. 당연히 더 힘들져.. 군대를 길게 갔다오다보니 이미 그전에 학점관리 안되어 있었던데다, 복학하니 3학년2학기.. 한학기만 더 하고 싶어도 학비나 그 이외 돈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그냥 그저 그렇게 졸업을 해야 했습니다. 아 빠뜨렸는데.. 전 결혼까지 일찍했었습니다. 학교 다닐때 했으니.. 어쨌던 아버지 명퇴에, 결혼까지 했는데 돈을 벌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고졸 만 뽑는다는 조그만 지역 납품업체에 학력 속이고(?) 연봉으로 천만원 받고 사회생활 시작했습니다. 나름 지방국립대 경영학과 나왔는데..ㅠ,.ㅠ 분명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때만 되어도 웬만한 4년제 나오면 갈 직장은 많았었는데..
아무튼 잡초처럼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잡초처럼 이것저것 다 했던 것이, 어찌보면 다 제 재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지금은 나이에 비해 애도 많이 컸고, 넉넉하진 않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지금도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이글을 읽고 그때를 기억해보니... 어휴..지금은 행복 X 1만배 입니다.. ^____________^
외환위기 터지던 97년 그해 대학 졸업했죠. 지방 4년제 대학. 그 자체만으로도 암울한데 외환위기는 우리 졸업식을 슬픔과 비통으로 만들었죠. 졸업후 약 6개월 놀았는데 그때 당시 말이 월급 안줘도 경력만 쌓을수 잇으면 취직해라였죠. 노는 사이 이력서는 수십통 썻고, 몇번의 취업도 했었죠. 쓰레기 회사들.........책 강매회사, 애들 졸업장보고 집집마다 전화해서 교제 파는거... 자판기 판매 영업. 그곳은 영업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고 노골적으로 사기치는 법을 가르치는 곳들이엇지요.... 그러다 취직된곳이 대전에 있는 한 중소기업..쥐꼬리 월급과 쉬는날이 없는 걸로 압축되는 회사. 근데 거기서 참 열심히 일햇습니다. 동료들과 동고동락 같이하고 그러다 보니 경력이 쌓여 대기업은 아니어도 꽤 이름잇는 중견 업체로 옮길수 있엇고 나름 거기서 제 인생의 직장생활에 꽃(?)을 피우다가(ㅎㅎ 너무 직장생활을 조금해서 그렇겠지요) 지금은 자영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네요. 이제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쌔끼들이 둘이네요^^
2007/11/21 13:47그렇죠. 월급 안 줘도 경력만 쌓을 수 있다면.. 했던 많은 분들이 있었죠. 저도 사실 그랬고 말이죠.. 그런데 이거 세상 만만치는 않더라구요. 그런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환경이 참 많더라구요.. 지금은 그때보다 행복한 거 맞죠?^^
2007/11/24 21:39벌써 10년인가요..당시 중학교3년생 이었던 저는, 기업 연쇄부도로 인한 아버지 사업의 흑자부도 (나중에 회계학 시간에야 알았습니다)로 친구와 둘이서만의 쓸쓸한 졸업식을 했고..그때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