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은 IMF 수혜자? 피해자?

Ring Idea 2007/11/21 09:09 Posted by 그만
오늘이 IMF 구제 금융을 받아들이기로 발표한 지 꼭 10년째 되는 날이라죠?

그만도 10년 전을 생각하면 정말 아득합니다. 당시 97년말 4학년 선배(예비역)와 후배들이 졸업을 앞두고 거의 절망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졸업자 50여명 가운데 취업자가 3명이라뇨..ㅠ,.ㅠ

대기업에서는 합격을 통보한 뒤 갑작스럽게 몇 달 동안 출근 명령을 내리지 않은 경우도 있었구요.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합격한 '지원을 취소해달라'는 회사 측의 읍소에 눈물을 머금고 다른 곳을 알아보거나 끝까지 그 기업에 가겠다면서 무작정 기다리는 웃지못할 사연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군대를 다녀와서 97년 3학년을 보냈고 4학년을 앞둔 상황에서 너무나 깜깜한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죠. 휴학 결정이나 1500원대의 살인적인 원달러환율 덕에 유학(어학 연수) 갔다가 중도포기하고 돌아오는 동료 학생들이 많았습니다.(처음에 800원대였다고 잘못 썼군요.. 쿨럭..) 거의 모든 대기업이 신입사원 시험을 축소하거나 폐지했으며 이 같은 상황은 언론사들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학 4학년이었던 98년의 암흑기를 지나면서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취업자보다 대학원 진학자가 더 많은 기현상을 목격하게 되었죠.

당시 그만의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치 않았습니다. 뭔가 해야 했죠. 그런데 넋놓고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구요. 그래서 시작한 일이 '생명보험회사 영업사원'(영업 관리가 아니라)이 되었습니다. 그만의 사회 첫 출발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대졸사원들을 생명보험회사 지점의 사무관리직을 맡기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그만이 들어간 회사는 당시 삼성생명의 남자 대졸자 영업조직의 선전에 자극받아 직접 영업자를 위한 직원을 모집했고 거기에 응시해 바로(?) 붙었습니다. 일정 기간 이수를 받고 보험설계사 시험도 통과했구요.

4학년 1학기 몇 달의 교육기간과 강남역 지점에서 시작된 영업사원의 한여름은 그렇게 지나갔죠. 평촌 분당 산본 등 신도시의 아줌마 영업 사원의 발이 못 미칠 것이라고 보이는 그곳을 찾아 소위 빌딩타기(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층에서 내린 다음 계단을 통해 각 층을 방문하며 영업하는 일)를 시작했습니다.

참담했죠. 정말 대학을 내가 왜 나왔나. 정말 이렇게 돈을 위해서 일하면서 내가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성장을 이뤘던 해였던 것 같습니다.

사무실에 들른 그만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너, 뭐야? 자꾸 귀찮게 이런 것들이 들어오게 하나?'라며 어디인지 모를 곳에 소리를 지르는 것을 참고 들어야 했습니다. 경비원 아저씨들에게 떠밀려 건물을 쫓겨난 적은 너무 많죠. 브로셔를 사무실에 앉아 있는 새파란 사원에게 건내 주자마자 제 눈앞에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구요. 한 장 더 놓아두었다가 버럭 화내는 것을 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새벽녘에 출근해 각종 브로셔를 잔뜩 가방 속에 넣고 건물타기를 준비하러 나가다 보면 우연찮게 아주머니 보험 설계사들을 많이 만나게 되죠. 같은 내용의 브로셔를 전철 안에서 복습하면서 마주 앉아 있는 중년 아주머니 보험 설계사와 청년 보험 설계사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하핫..^^

이들은 사회 첫발을 내딛은 신출내기가 봐도 정말 강호의 고수더군요. 1, 2억 연봉 영업 사원이 정말 가능하다는 것이 느껴지는 그들을 먼 발치에서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던 적도 많았죠.

지금은 이력서에 넣지 않는 그 짧은 보험설계사 시절, 세상을 향해 낮춰야 하는 방법을 배웠고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억지로라도 고쳐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반대로 이 길이 내 길이 아닐 때는 끌려가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도 했죠.(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보험설계사로서는 패배자였죠. 그렇게 어려웠던 당시에도 성공하는 보험설계사는 많았으니까요..^^ 적성이 안 맞았던 것도 있었구요. 보험설계사가 안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후 98년 하반기에 잡지사 기자로 입사한 뒤 보험회사 동료로부터 뺨을 수차례 얻어맞았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당시 지점의 실적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들 명의의 보험을 퇴사 이후에도 유지시켜야 한다는 불문율을 어기고 가족과 친구의 보험 계약이 해지되는 상황을 일부러 막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죠.

98년 절망의 IMF 구제 금융 시절에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출퇴근 하면서 매일 누구인지 모르는 노숙자들에게 천 원 한 장씩을 주면서 그 이상을 벌어야겠다며 자신을 컨트롤 하는 방식도 배웠습니다.

IMF 구제금융이 아니었다면 바로, 또는 재수나 삼수를 거쳐서라도 언론고시언론사 시험에 매달려야겠다는 결심을 했을텐데 당시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던 그만에게는 또 다른 방식의 삶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IMF 구제금융 시절을 혹독하고 잔인한 기억으로 갖고 있지만 좋은 배움의 시절로도 기억한답니다.

여러분의 IMF 구제금융 시절은 어땠나요?^^

이 글이 반응 좋으면 다음에는 엽기적인 잡지사 시절 이야기도 해볼께요~ㅋㅋ

** 전 국민이 저보다 훨씬 더 혹독한 시절을 보냈을텐데요. 이 당시부터 우리의 삼성 황태자님께서는 앉아서 주위 시종들이 알아서 갖다 바치는 계열사 지분을 챙기고 있었네요. 허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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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 역시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니 이런 생각이 있구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절대 imf시대와 같은 외환위기가 오기를 바란다거나, 주식이나 부동산이 폭락하길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주식투자자이고그것도 리스크가 큰 데이트레이딩과 파생쪽을 주로하는, 저희 부모님도 강남인 송파쪽 아파트에 살고 계십니다. 또한 경제위기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사람들이 제가 혐오하는 얍삽한 투기꾼도, 개기름 좔좔 흐르는 졸부들도 아닌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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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1월 21일 국가부도사태.. 내가 제일 처음 피부로 느꼈던 IMF의 힘은 바로 라면이었다! 라면 값이 갑자기 두배로 뛴 것이다. 자취하던 시절, 동전 몇개에 브루스타와 냄비만 있으면 간식같은 라면끼니는 별거 아니었는데, 갑자기 라면 값이 올라 당황했던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대량해고와 실업사태가 오면서 라면 매출이 두배 뛰었다고 한다. 어느날, 취업을 준비하던 선배들에게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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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이하쿠  수정/삭제  댓글쓰기

    엽기적인 잡지사 시절 이야기....매우 궁금 합니다^^

    2007/11/21 09:44
  2. 칫솔  수정/삭제  댓글쓰기

    엽기적인 잡지사.. -.ㅡㅋ 설마 여의도 시절은 아니리라 믿지만, 여의도 이야기면 하지 맙시다. 그것도 악몽이오~

    2007/11/21 10:05
    • 그만  수정/삭제

      ㅋㅋ.. 그 시절 이전의 더 엽기적인 잡지사가 있었오..ㅋㅋ.. 여의도는 두 번째 잡지사였죠..ㅠ,.ㅠ

      2007/11/21 15:02
  3. 세인트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만님 글 덕분에 갑자기 그때 당시가 생각나네요.

    96년, 97년 당시 특히나 외부 영향에 큰 부산에 살고 있었는지라,
    (거의 대부분이 생산, 무역업체들이니)
    부산은 IMF 여파가 좀 일찍 찾아온 편이었습니다.
    외환위기라고 하기 전 부터 쓰러지는 회사들이 한 둘이 아니었지요.

    알바겸 직장겸 해서 편집디자인 쪽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납품이 완료되거나 완성된 홍보물, 책자 등
    거의 2천만원 넘게 거래처들에게서 떼이고 망했었습니다;;
    (사실 거의 망하다 시피해서 못 주는 것이긴 했지만요 -_-;;)

    밥벌이할 것 없나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계기가 되었지요.
    올라와서 원고 대필도 많이하고 -_-;; 그때부터 인터넷 페이지들의 디자인을 시작했었으니;;

    그 후 이야기야, 뭐 어쩌다보니
    그당시 가장 잘 나간다는 웹에이전시 업계에 있었고,
    요새는 가장 잘 나간다는 인터넷포탈 업계에 있네요. -_-;;
    능력은 저도 잘 모르겠지만, 정말 직장운(?)은 있나 봅니다.

    2007/11/21 10:24
    • 그만  수정/삭제

      살아가다보면 정말 어려웠던 시절, 누구나 힘들었던 시절을 잊어버릴 때가 많은데요. 가끔 그때 시절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죠..^^ 오늘 같은 날이 그날이네요..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그때 시절로 돌아가라면 솔직히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쿨럭 ㅠ,.ㅠ 저는 '불행중 다행' 족속이죠..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요..ㅋㅋ

      2007/11/21 15:04
  4. 큰바위얼굴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의 취업시장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백번정도 면접을 보다..계속 떨어지고 이대로는 도저히 못살

    것 같아 저도 보험회사에서 일한지 3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글쎄요..

    이 일을 하려면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번다..그런 단순한 목표가 아닌

    나는 이 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다..등등의..^^

    2007/11/21 11:15
    • 그만  수정/삭제

      요즘 많이 힘들다고 하더군요. 무슨 일이든 적성에 맞고 자신의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인정하는 큰 성공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인정하는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홧팅이에요~ 큰바위얼굴님~^^(아, 그리고 혹시라도 본문에 보험설계사 일을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 의도는 절대 아니에요..^^ 내용에 사족을 붙였습니다.)

      2007/11/21 15:06
  5. 문인숙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IMF시절 창업자금의 대출금 이율이 높아지는 바람에 안해본 일이 없었습니다...정말 눈물을 머금고 아무도 모르게 심지어 남편도 모르게 가정도우미를 비롯해서 작은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주부알바를 했습니다...겨우겨우 두배로 오른 이자를 메꾸면서 지난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이제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려니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제대로 영어 실력이 없다구 변변히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알바를 하네요...대학까지 나와서 알바라니.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었요.그러나 딸한테 미안해서 왜 좋은 곳에 취직도 못하냐구 따져 묻지도 못하겠더라구요.제대로 학원한번 보내지 못하고 영어연수한번 보내지 못한 어미가 어찌 영어실력이 탁월하지 못하다 탓하겠어요.ㅠㅠ..이제 좋은시절이 왔음 해요.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구나 일할수 있는 그런 좋은 나라...ㅎㅎ

    2007/11/21 11:33
    • 그만  수정/삭제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생각보다 맘대로 되지도 않죠. 이율 하니 그 당시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자 인상률이 생각나는군요.. 캬~ 정말 어이가 없었죠. 지금 카드 이자율을 은행들이 거둬들였으니.. 문인숙님 말씀대로 앞으로는 더 나은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2007/11/21 15:08
  6. 스머프  수정/삭제  댓글쓰기

    IMF 구제금융받았을때 저는 은행에 취업한 상태에서 군대에 있었죠. 상고를 졸업하고 지금은 퇴출된 은행에 다니다가 군에 입대했습니다. 병장진급하고 얼마후 직장이 퇴출되는 장면을 저녁뉴스로 군대에서 접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구요. 얼마후 제대하고 나오니 퇴직금이 안 나오고 직장조합에 가입한 돈도 모조리 날렸습니다. 취업하려해도 고졸인데다 망한 직장다닌 경력은 경력으로 인정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대학은 나와야겠다는 일념으로 새벽5시부터 일어나서 공부하고 오후3시부터 새벽1시까지 술질에서 서빙하면서 일했습니다. 그누구보다도 힘든 생활을 2년 했습니다. 결국 대학은 들어왔고 졸업하고 조그마한 사업장을 꾸러서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시절 힘들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조금씩 서로 돕고 이해하며 살아야죠. 어려운 시절만큼이나 그 힘든 파고는 넘는 자들은 값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만님 엽기적인 잡지사기자 이야기 듣고 싶네요.

    2007/11/21 11:44
    • 그만  수정/삭제

      황당한 일이 실재했군요. 스머프님도 힘내시구요. 더 좋은 날들만 있길 바랍니다. 잡지사 이야기.. 이런 분위기라면 당근 해야겠네요..ㅋㅋ

      2007/11/21 15:10
  7. 98년2월 졸업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땐 그랬습니다.
    단지 97년11월 IMF사태가 나고, 막연히 졸업하면 그래도 취직은 되겠지 하고 98년2월에 졸업하고나니...흠...백수시작...

    나 자신을 낮추는 계기가 되고 날 돌아보는 계기가 된...

    한편으론 누군 군대 면제라, 6개월 방위라, 18개월 방위라 한창 경기좋을때 졸업해서 취직다했는데..나는 왜 꽉 채워 군대갔다와서 백수가 된건가 싶기도 하고..

    취업원서받기도 어렵고 면접보고 출근하는 줄 알았는데 그 회사 부도나서 출근도 못 해보고...

    더 웃긴건 그 다음해던가 경기가 풀리면서 증권회사에 원서 받으러 갔더니 기졸업자라 원서교부조차 안된다고 하더이다.
    그래서 한소리 했소..작년에 당신들 IMF라고 신규공개채용 안했지 않느냐고..그러더이다...그건 그때 상황이고..라고..

    그렇게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거다...

    2007/11/21 11:48
    • 그만  수정/삭제

      많이 힘들었던 시절을 겪으면서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 '차별적인 사회 구조'이겠죠. 이에 대해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생기게 될지 아니면 좌절하고 한탄으로 끝내게 될지는 처음 생각과 많이 다르게 됩니다. 저도 가끔 '그럼 그렇지' '그럴 수밖에 없지 뭐'라는 패배의식에 젖어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 혼자 살아가고 말 세상도 아니고 아직도 더 많은 날들을 살아야 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의지도 생기지 않을까요?

      2007/11/22 18:28
  8. 본드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일 피해본 ....학번은 92학번.................결혼도 연령 평균33세.............

    2007/11/21 11:49
    • 그만  수정/삭제

      91, 92, 93, 94.... 다들 힘들죠.. 일단 IMF를 정면으로 맞닥뜨렸던 91, 94학번이 흔히 저주받은 학번이라고 하죠. 요즘 사람들도 많이 하는 이야기죠.. 그래도 꿋꿋하게 버텨 보는 거죠~^^

      2007/11/22 18:29
  9. moon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는 집두 날라가고 돈 때문에 죽을뻔 했죠 가장이 40중반나이 아이들 가르키는게 정말 꿈 같았습니다 물론 몸까지 아프구요 국민학생 고등학생 이었던 아이들이 대학졸업하고 취업했고요 작은아이는 지금대학 3학년 취업준비중 연수다 뭐다 엄두도 못냈지만 나름 대로 긴장된 대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힘들었던 시절이 없더라면 아이들이 지금 보다 꼭 잘됐을 거라는 보장두 없구요 집 사는 것은 꿈도 못꾸구요 아직두 IMF 잔민으로 살구 있습니다 사실 나이 드신분들이 더 절망적 입니다 겨우 아이들 가르치느라 노후준비 전혀 못했거든요 연세 드신분들은 6.25 보다 낫다고 하시구요 지금이 힘들다 하시면 우리세대는 IMF 때보다 낫다 하지만 개인마다 느끼는게 다 다르겠죠? 그런일들 다시는 안 일어나게 열심히 살아야죠

    2007/11/21 12:07
    • 그만  수정/삭제

      정말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졌었군요. moon님 힘내시구요~~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으셔서 꼭 성공하실 겁니다.~

      2007/11/22 18:32
  10. 지나가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보수꼴통들은 지금이 IMF때보다 살기 더 어렵다고 하는데... 사실일까요? 저도 IMF 꽤나 혹독하게 보냈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살기 좋은데요..
    당시 기름값이 없어서 집에서 중무장하고 살았거든요.

    2007/11/21 11:56
    • 그만  수정/삭제

      머 당시에도 그다지 불편함 없이 살았고 지금도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죠..^^

      2007/11/22 18:32
  11. 후니777  수정/삭제  댓글쓰기

    1990년에 대학입학해서 1998년 2월에 졸업했습니다. 군대다녀오고 4학년 1학기 마치고 영어해보겠다고 어학연수 1년다녀왔더니 IMF라고 하더군요. 국가부도사태에 어떤 취업도 되지 않았고 그 때 졸업했던 친구들 중 상당수가 대학원, 학원선생 또는 공무원시험으로 모두 내몰렸죠.. 당시 취업현실이야 아마 말안해도 알 듯 싶습니다. 지방국립대 졸업, 평점 B0, 토익 그럭저럭 때문에 저 역시 취업포기 상태였죠.. 자폐 수준이 되었고 이력서 넣어도 면접 기회조차 없었고 .. 집에 손 벌리기도 미안했고.. 그래서 시골집에 내려가서 한 4개월을 하늘쳐다보고 살았답니다. (1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땐 농사를 짓고 살아야되나라는 생각을 할만큼 암담했죠.. 그러다가 천우신조로 LG그룹 계열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이 역시도 스토리가 깁니다만..) 지금은 과장 2년차로 생활하고 있답니다. 그 때 입사했던 친구들의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나락, 인생의 막장에서 겨우 줄을 잡았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직장생활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글을 남기지만.. 멀쩡하고 공부 열심히 했던 그 때 졸업했던 친구들 그리고 동기들이..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기회를 박탈당했던것을 생각하면..

    요즘직장생활하면 개인주의가 사실 많죠.. 그렇지만 전 항상 이렇게 생각한답니다. 나라가 살아야 기업도 살고 기업이 살아야 개인도 살수 있다고요.. 어렵지 않고 고통받지 않고 어려움속에 처해 보지 않으면 현재의 행복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잘 모르죠..

    전 현재의 제 인생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운이 좋았다"라고 표현한답니다. 제 삶이 제가 잘나서 그런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아주 작은 운이 좋았다고..

    그 때 졸업했거나 또 그 때 어려움을 겪었던 많은 분들.. 혹시 지금은 어렵더라도 아마.. 여러분들이 겪었던 그 고통이 인생의 밑거름으로 먼 미래에 충분히 보상되리라 생각합니다..

    - IMF 때 졸업했던 친구가.

    2007/11/21 11:57
    • 그만  수정/삭제

      결국 지금은 잘 풀리시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저도 '운'이 좋았어요..^^ 늘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ㅋㅋ

      2007/11/22 18:33
  12. 도둑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사업하다가 쪽빡찿죠
    고금리에 못버티고 아직도 신불자.ㅠㅠ
    98년여름 계곡마다 사업에 실패한 개인들 빨래비누하나와 비닐텐트치고 라면이없어서 산에풀뿌리케먹더군요..
    정경유착과 달러빚으로 과잉경기부양이 원인이었죠^^

    2007/11/21 12:00
    • 그만  수정/삭제

      아.. 아직도 도둑님(?)에게는 IMF가 진행형이시군요. 힘내시기 바랍니다.

      2007/11/22 18:34
  13. 그당시 고딩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접적인 피해자 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수능보고 대학 원서쓰고 고생했죠... 취직이 잘되고 학비가 싼 교대 점수가 높아져(이전에도 높았지만 아이엠에프 이후에는 확실하게 상류권 대학교로 점수가 올라갔으니...ㅡ.ㅡ) 낙방을 했죠...
    고등학교 3년 동안 안전하게 들어갈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예상합격점수보다 30점 이상 올라갔으니...

    2007/11/21 12:04
    • 그만  수정/삭제

      당시를 겪었던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였죠. 사실 가해자는 우리 사회가 쌓아 놓았던 모든 불합리성이 경제의 부조화를 만들었고 그것이 일순간에 내외적 요인에 의해 불거져 나왔던 것으로 봅니다. 어쨌든 좀더 힘내서 살자구요~

      2007/11/22 18:35
  14. 진명  수정/삭제  댓글쓰기

    97년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고 운이 좋아 7월 발령도 났었죠. 시집갈 밑천 만드느라 40만원씩 적금 넣었는데 그해 말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98년 IMF로 임금 삭감- 적금 넣고 나면 차비도 모자라 마음 고생하던게 생각납니다. 이른 새벽에나 있는 비둘기 타기 위해 남보다 1시간 넘게 일찍 출근, 1시간 넘게 일찍 퇴근하는 생활을 했었지요.
    그래도 그 당시엔 직장있다고 모두들 절 부러워 했던 것 같습니다.

    2007/11/21 12:06
    • 그만  수정/삭제

      불행은 어깨동무하고 온다고 하던가요.. 정말 힘든 시절을 겪으셨군요. 그래도 자기 만족에 대한 깨달음을 갖고 사시는 것 같아서 부럽네요.

      2007/11/22 18:36
  15. 샬빠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만은 -> 그 많은 - _-;
    IMF 때가 아닌 현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만,
    누구나 사정은 다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그 사정이 누가 더힘드니 안힘드니 할 수 없는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요한 건 그걸 딛고 일어났느냐 못일어났느냐 하는거죠,
    엽기적인 잡지사라, 궁금해지는군요 ^^

    2007/11/21 12:09
    •  수정/삭제

      블로그 주인장 이름이 그만이라서
      그 많은X 그만은O

      2007/11/21 13:44
    • 그만  수정/삭제

      대신 답해주셨네요. 글에 등장하는 '그만'은 제 필명이랍니다.^^; 헷갈리셨다면 죄송~
      엽기적인 잡지사 조만간 올려볼께요..ㅋㅋ

      2007/11/22 18:37
  16. 써니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다음 얘기 궁금~ ^^

    2007/11/21 12:10
    • 그만  수정/삭제

      ㅎㅎ.. '엽기'에 다들 낚이신 건 아닐런지.. ㅋㅋ

      2007/11/22 18:37
  17. 내나이 21살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학교 동기들이 도시락을 싸고 다녔다.

    2007/11/21 12:21
    • 그만  수정/삭제

      도시락.. 그랬죠. 소비가 급속도로 축소되면서 대부분의 영세 자영업자들이 나락에 빠져들었고 경제의 양극화는 점차 심해졌죠.

      2007/11/22 18:38
  18. 86년생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이 겪으신 그고통은 인제 아랫세대인 80년~90년생들이 그대로

    물려받겠군요ㅜㅜ

    우리사회는 언제쯤 변할수있을까요??

    2007/11/21 12:24
    • 그만  수정/삭제

      굳이 수평 비교는 힘들겠지만 지금 청년 취업난이 고착화되고 구조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상념에 빠지게 됩니다.

      2007/11/22 18:38
  19. 달고나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때가 스물여섯이군요. 많이 지났네요. 지금이야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잘크고 뭐 돈이없어 그렇지 재미나게 살고 있네요.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처참했더랍니다.

    잘나가던회사. 흑자부도내고 사장이 사라진이후로 회사에 차압들어오고 그걸 직원끼리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죠. 그렇게 회사에서 짤린(?)이후로 정신을 차려보니 봄이 되었더군요. 그봄은 아버지의 환갑잔치가 있었죠. 통장에는 한푼의 돈이 없더이다.

    별수 없었죠. 귀하게 모아놓은 수동카메라, 망원렌즈, CD-RW(이거 당시에는 신품은 120만원, 중고도 80만원)등등 모든걸 내다 팔아버렸죠. 그돈으로 형제들과 조촐하게나마 성의표시를 할수 있었죠. 그러고나니 이젠 정말 빈털털이. 이래선 안되겠다싶어 전 직장동료와 의기투합. 장사를 조그마하게 시작했었죠. 그나마 얼마 안가 말아먹고는 기술을 배우려 모형비행기를 만드는곳에서 일년을 골방생활했죠. 그렇게 어렵게 나온 비행기가 일년에 한두대도 안나가는걸 알고는 퇴사. 당시 붐을 일으키던 컴퓨터관련 쇼핑몰을 차렸고. 쇼핑몰이 잘 안되니 알바로 투잡을하며 생활비를 벌었죠. 그러다가 세컨잡이 본업이되어버리고 다시그게 연결되어서 지금은 조그맣게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간혹 생각합니다. IMF가 아니였다면 그회사에서 더 많은것을 배우며 지금도 나녔을것 같기도하고. 오히려 그때 야생(?)에버려진것이 다행스러운것 같기도합니다. 하지만 야생에 버려진덕분에 사실 전 할수 있는일이 많아요.

    컴퓨터프로그래머(C,JAVA,VB),웹프로그래밍(PHP,MYSQL,FLASH),모형항공기제작 심지어는 한국통신의 전화가설도 할줄 안다죠ㅋㅋ. 역시나 똥통에 뒹굴어도 살아있는게 낫다고. 어떻게든 치고나온덕분에 지금은 하루한번은 웃을일 있이 살고 있네요. 머 야생에서 얻은 저의 자산을 아들에게 물려주 방도를 찾으면서말이죠.-사실지나고나니 웃는거지, 당시에는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건지 몰랐었죠. 머 저세상 생각도 해보고. 하지만 뒤돌아보니 좋더라는 일단 살아야아는거겠죠.

    2007/11/21 12:29
    • 그만  수정/삭제

      처참한 시절을 거쳐 지금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사시는 모습에 저도 많이 힘이 됩니다. 우리 모두 이럴 때는 IMF의 수혜자였군요.^^

      2007/11/22 18:39
  20. 대한민국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보면 IMF는 조중동 책임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IMF터지기 직전까지도 정치권력에 군림할려고 우리나라 경제 아무문제 없다고 한게 가장큰 문제..그들이 정말 몰랐을 까요? 정말 우리나라 언론들 문제 엄청 많음..

    2007/11/21 12:38
    • 그만  수정/삭제

      IMF 이후 각 언론사들 역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경쟁적으로 경제섹션을 마련하고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과 전문적인 경제 소식을 전달해주겠다던 강한 의지를 보였죠.
      지금은? 갸우뚱~^^

      2007/11/22 18:40
  21. 쌍팔년생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때 전 초딩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건설쪽에 몸담으셨는데 점점 기울어저서(도박도 했지만.) 집안이 갈수록 싸늘해졌습니다. 덕분에 집 전세 올려달라는 거 못 해주고 반지하로 이사갔는데 여름엔 송충이, 귀뚜라미가 우릴 반겨주었습니다. 장마철엔 창고에 물이 들어가기도 했죠. 그리고 문화생활비(ex 영화관이라든가)는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화장실도 너무 작아 샤워도 앉아서 해결해야 했는데 어떻게 여차저차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가 노력하여 지금은 방 3개 짜리 집에서 삽니다. 더 이상 쪼그려서 샤워하지 않아요. 무능력한 아버지는 중학교 때 집을 나가 부계 사촌들에게 간헐적으로 소식을 듣습니다. 철들고 나니까 기명사미가 싫어지더라구요. ㅆㅂㄻ

    2007/11/21 12:52
    • 그만  수정/삭제

      아 난감했던 시절을 거치셨군요. 그런 어려움에 대한 경험이 오히려 생존력을 높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ㅣ

      2007/11/22 18:41
  22. 정직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옥이었죠... 98년초에 쫄딱망해서 집까지 팔아먹고 김대중정부때 빛탕감하며 살았고 이제서야 예금하면서 산답니다. 그런데 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이라면서 표구걸을 하고있네요 ...

    2007/11/21 12:59
    • 그만  수정/삭제

      맞아요. 지옥이었죠. 나라가 망하는줄만 알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앞이 캄캄했죠. 당시 책임자들은 여전히 잘 산다고 하대요.. 세상 참~^^

      2007/11/22 18:42
  23. 브라이언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이네요.
    공감합니다.

    2007/11/21 13:00
  24. 레블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97년 여름 운좋게도 지금은 망해버린 대우그룹 계열사에 합격했습니다. 그 어려운 시절을 (짧았지만) 상대적으로 편하게 지낸탓에 그만님처럼 많은 배움의 시기를 갖질 못했나 봅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2007/11/21 13:05
    • 그만  수정/삭제

      다행이네요. 뭐 다 같이 고생하자는 식은 더 어이가 없죠. 고통분담도 차별이 있다는 것을 우린 그 때 깨달았거든요. 일단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결코 겪지 않았을 위기였죠.

      2007/11/22 18:44
  25. 팔오년생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그땐 다들 어려웠네요.
    우리아버지는 교사라 짤리는 어려움없이 그럭저럭 먹고 지내왔음.
    친구아버지들 보면 회사에서 그냥 나오거나 짤리거나 퇴직금으로 가게 차리고 그랬었는데..금모으기 운동할때도 갖다내놨었죠.

    2007/11/21 13:05
    • 그만  수정/삭제

      뭐.. 다행이네요. ^^ 어려웠던 시절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 시절이 반드시 해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2007/11/22 18:44
  26. 공감....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만해도..여기 쓰신분들의 사연만 봐도 눈물이 나는 군요..
    잃어버린 10년이라..수구세력은 50년을 망가트려놓고 그나마
    남은 10년마저 이렇게 표현하더군요.분노하고...분노합니다

    2007/11/21 13:09
  27. 오늘도 아자아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때 생각하니까 지금은 웃음만 나네요.
    회사다니면서 늦깍이 대학생이 되었더니만 바로 IMF 터졌었죠. 회사는 월차내고 그다음날 출근하니 부도나 있더군요.
    집안사정상 벌어 다녀야 하는데 대학을 포기해야될 기로에 섰었지만 겨우겨우 졸업은 할 수 있었답니다.
    회사도 겨우 구해서 직장생활하면서 저녁에 눈치보며 야간대가고,,,
    참,,,그 시절을 잊고 살았네요.
    지금도 정신없이 살기는 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젊음이 있었기에 헤쳐나갔던거같아요. 이제는 전공으로 먹고사는데요. 뭐,,큰회사는 아니지만 작고 알찬회사들어와서 열심히 살고 있답니다.
    결혼도 했고 아들녀석도 하나 있고요..
    부모한테 받은것도 없고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지만
    귀여운 아들과 우직한 남편과 함께 그래도 일상이 행복하답니다.(아참, 저는 여자예요.ㅋㅋ)
    그런걸 보면 돈과 행복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거같아요.

    2007/11/21 13:11
    • 그만  수정/삭제

      님의 말씀처럼 돈과 행복이 비례하진 않지만 돈이 너무 없어도 너무 많아도 문제라는 것을 그때 깨닫긴 했습니다. ^^ 어쨌든 지금 좋은 모습으로 살고 계신다니 너무 좋네요.

      2007/11/22 18:46
  28. 남궁정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던 어느날 밤에 어머니가 왠 형(6학년 정도?)을 데려와 제 방에서 재우시더라구요. 전 안방에서 자고... 자고나서 어머니한테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어머니 친구분 아들인데 자영업하던 그 집 아저씨가 부도가 나서 가족이 거의 공중분해됐다고 했나.. 그 형도 노숙생활한다고, 전철역에서 만났는데 잘 곳 없다고 해서 너무 안쓰러워서 데려왔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경제위기'라는 단어가 제일 실감이 났던 때군요.

    그리고 98년 겨울엔 어머니가 택시기사랑 대화나누는데,
    '금모으기 그런거, 있는놈들은 더 안내고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만 내라 그런다'고 분통 터뜨리시는데.. ^^
    저는 학교에서 배운대로 '엄마 그래도 국민이면 내야돼~'했다가 야단맞은 기억이..
    지금은 어머니 말씀이 백배 공감된답니다.

    작년에 지자체장 첨으로 투표했고 올해 대통령 처음 찍는데
    과연 누굴 찍을까요오~?

    2007/11/21 13:18
    • 그만  수정/삭제

      아.. 그랬나요.. 그 친구는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2007/11/22 18:46
  29. 네모선장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막 군 제대해서 막막하던 시절이었죠,,
    그전만해도 엘지반도체 인턴에 입사추천장에 지방대라도
    취직걱정 안했는데 제대하고 나니 다들 영어다 공무원시험들 준비하고, 나름대로 부모님이 안정적인 직업이라 큰 걱정없이 파고를 넘
    었고, 어릴때부터 근검절약에 항상 어렵게 살아온지라,,
    개인적으로 좋은직장은 아니지만 대학졸업전 취업해서 이제 과장이네요,,

    2007/11/21 13:18
    • 그만  수정/삭제

      취업의 양극화의 극단을 달렸던 시절이었죠. 고관대작 자식들이 더 취직이 잘 되던 그 때였으니까요.^^

      2007/11/22 18:47
  30. 94학번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자기 97년 12월이 생각나네요...대한생명,쌍용,LG 합격을 통지 받고도 입사못해서 전전긍긍하던...그래도 다행히 98년 3월에 우여곡절끝에 취직을 해서 아직까지 댕기네요...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참 많이들 고생하셨죠...내년이면 10년짜리 적금도 타고...이글을 보니까 감회가 새롭네요...역경을 이겨냈다는 생각도 들고...착찹한 마음도 들고...

    2007/11/21 13:22
    • 그만  수정/삭제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기분이 영~

      2007/11/22 18:47
  31. 그때 졸업,,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그때 졸업전,, 마지막 학기.. 98년도에 졸업 했으니 말이죠.. 전 간호과라 취업이 잘 되는 과였는데도 그땐 정말 암울했어요.. 그러니 다른 과는 더 했겠죠.. 좋은데 취직되었던 애들도 합격취소받고 , 그랬으니까요,,수많은 이력서를 썼던 기억이 나네요.. 사람들이 자살을 왜 하는지 이해가 갈정도로 그땐 암울했어요,, 98년 8월에야 겨우 그것도 아주 작은 병원에 취업해서,, 월급이 밀리고,, 언제적 월급이었는지도 모르게.. 3달정도 밀리고 그랬으니까,, 아주 쥐꼬리 만한 월급에,, 밤근무를 10일을 넘게 하면서,, 힘들게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넘 힘들고 우울했던 시기.. ㅎㅎㅎ 술 먹으면 넘 짜증나서 펑펑 울었던 기억도 나네요..

    2007/11/21 13:26
    • 그만  수정/삭제

      저는 신방과였는데요... 엽기 잡지사에서 집에 갈 차비가 없어서 한 달에 닷새 정도 빨래하려고 집에 들어갔었죠..^^

      2007/11/22 18:48
  32. 파견직이라는 명칭~  수정/삭제  댓글쓰기

    뭉클 가슴에 다가오는 제목입니다. 뭘로 입사하든 다 정규직이었던 그때... IMF이후... 우리는 비정규직. 파견직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월급여 55만원(세액공제후) 이게 무슨 금융사 월급인지... 당시 운좋게 정규직으로 입사한 친구의 연봉 1800이었던 그때... 급여가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는 아닐거라는 하나의 희망으로 그돈으로 적금넣었던 기억에 눈물이 나려하네요... 게다가 정규직 사원들 정리해고를 앞두고, 비정규직 직원들을 무작위 퇴사명령 했던 그때, 어려서 그땐 항의라는 것도 몰랐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직장생활 딱 10년 되었네요...그 폐단은 지금까지도 지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소위 금융사라고 하는 은행,카드사에서... 적은 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되, 절대 장래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얄팍한 계산이었던거죠. 기업은 살아남기 위한것이라 하지만... 살아남은 후에도 달라진것 없더군요. 더 웃긴건... 파견직으로 2년, 잘 근무한 직원에 대한 특혜로 자유계약직? 아님 직계약직? 뭐 이런 명칭을 제시하면서 정규직의 문은 열어주질 않고 있습니다.

    2007/11/21 13:27
    • 그만  수정/삭제

      생뚱맞은 기업들의 노동 유연성 요구를 그대로 다 들어주다가 지금 더 심각한 문제가 되어버렸죠. 사회적인 비용이 아마 더 크게 발생되고 있을 겁니다. 너무 급한 마음에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경제가 되었죠. 재벌집 자식들은 그때 사치를 '소비의 미덕'이라며 아예 대놓고 사치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2007/11/22 18:50
  33. 화이팅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수능 두번치룬 수능 첫세대. 94년 대학입학. 98년 대학졸업. 여자라서. 이렇네요 그 당시에 갑자기 생겨난 파이낸스에 취업해서(그래도 주위에선 일찍 취업되어서 무지 부러워했죠) 영업부터. 온갖일을 다 했네요... 그리곤. 도산....첨부터 금융업에 취업해서인지. 아직까지 금융권에 있습니다.. 은행에 있지만. 그것도 계약직... 지금 계약직은 그래도, 복지나. 여러가지 대우 받지만. 이때까지 몇년을 기다린 상태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로에 섰습니다. 제가 그리 잘 나지 못해서. 이렇게 있는것도 있겠지만.... 윗 글들을 읽어보니. 시대적 상황이란것도 참 무시못하겟고... 여러사람들의 댓글에 공감이 마니 됩니다...
    10년동안. 빚보증으로 집안 몰락해서. 우리집식구 저 빼고 모두다 금융불량 거래자 되고. 뒤늦게 결혼해서. 이제 돌된 아이 하나 있어요..모두들 화이팅입니다..잊고 있었습니다.. 10년이란걸....

    2007/11/21 13:27
    • 그만  수정/삭제

      여자분들이 아마 더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결국 지금 잘 지내고 계신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2007/11/22 18:51
  34. 더조은인상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여러가지 어우러진 요지경속처럼 구구절절 사연이 많네요.. 그만님의 잡지사 생활도 궁금해집니다...

    저는 그당시에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서 몇달치 급여도 못받고 나온 후에..지금은 사라졌지만 국민연금 환급받고, 실업급여 받으면서 이것저것 배우느라 정신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2007/11/21 13:30
    • 그만  수정/삭제

      정말 임금 체불.. 뭐 다들 요지경 세상 속에 등 떠밀려 살던 시기였죠..

      2007/11/24 21:39
  35. 민2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당시 상병 단지 얼마 안되었을때네요 ㅎㅎ 군대 아들놈 아버님이 퇴직하시고 많은 일이 있었죠 전 그렇게 98년도 전역하고 복학... 졸업 직전에 대학원 가려다가 아버지께 퇴짜 맞았죠^^ (지금은 사업을 접었지만) 모 경제신문사 IT학원에서 무료 프로그래밍도 배우고... 조그만 잡지사도 들어갔습니다만 천성이 게으른건지 2주에 한 3~4일씩 있는 야근이 싫어서(격주잡지) 한달반하고 나왔습니다. 그뒤로 공무원 준비하다가 마침 현재 다니는 회사 공채를 보고 쳐서 들어왔고 지금은 만족하면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몇달전 결혼도 하구요^^

    2007/11/21 13:30
  36. 많은걸 느끼는..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찌보면 예젼된 IMF엿습니다.
    전두환때까지는 국민들이 관강을 못햇고 정부서 달러 관리를 햇으니까요 노태우가 들어서면서 전국민 해외여햏 자유화..
    그당시 외국 못나가면 바보에 아주 가난하단 소릴들을때엿으니까요.
    무역수지가 흑자여도 관광으로 나가는 달러가 엄청낫을겁니다,
    다들 설마 이럴수 잇을까 햇겟죠
    위 어느분이 과도한 경기부양이라 하시는데 그건 아닙니다.
    외국에 소비하는 달러가 엄청낫다는거죠
    그당시 2집에 한집꼴로 해외여행가고 햇던것으로 알고잇습니다
    암튼 국가의 부도는 전국민의 문제 엿고 전국민이 책임질일엇습니다
    그런데 요즘 애들 전부 영삼이 잘못인양 말하더군요
    지금 다시 그때처럼 외자나 모든게 가까워진다는군요
    하지만 IMF가 오지 않는것은 이미 격엇기때문에 안오는것뿐입니다
    그시절 다들 고생햇으니 아마 잘들아시리라봅니다.,
    힘든여정도 잇고 좋은 여정도 잇고 그래서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가 소중한것이죠..

    2007/11/21 13:35
    • IMF  수정/삭제

      당시 영삼이 책임이 없었다고 절대 할 수 없죠.. 세계화 부르짖으면서 달러끌어들이고 물론 국민도 문제였지만 그러한 상황을 묵과하고 숨기기에 급급했던 정부와 언론이 크나큰 문제였습니다. 국민들이 정부가 그렇게 해외여행을 부추기지 않고, 우리 어렵다고만 했어도 그리 펑펑 써댔을까요? 더욱이 IMf를 통해 전두환을 거슬러 올라가 박정희 시절부터 쭈욱 이어진 정격유착의 부작용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구요. 대한민국 총체적인 구조화의 문제가 하나둘 드러나게 된 계기가 나라가 망할 직전에 가서였다니 그것이 더 소름끼칩니다. 지금도 우린 언론에 조종당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구요.. 진정으로 이번엔 청렴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자를 뽑아 제2의 IMF를 맞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국민들은 죄다 도산하고 어려웠지만 정치인. 재벌들은 어땠습니까? 그들은 그때도 뒷구녕으로 다 해쳐먹었습니다. 절대 잊지못합니다. 이번에 잃어버린 10년을 써대는 파렴치한 조중동과 딴날당에 치가 떨립니다. 누구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리돌아왔는데요!! 지금도 벌써 건설거품. 부동산거품을 부치기는 누군가가 있기에 국민들은 (특히 현 대학생들..) 뭣모르고 현혹되어 가고만 있기에 걱정스럽습니다. 어느사이엔가 조중동이 휘갈기는 기사에 세뇌되어 <잃어버린 10년>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고 써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 경험학습이란 무엇인가 되묻고 싶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가 있는디 되묻고 싶습니다. 당시 IMF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참 살만해 진겁니다. 그 당시 발생한 비정규직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크나큰 문제이지요. 비정규직을 해결할 만한 대안을 가진 후보를 이번 대선에서 뽑아야 합니다.

      2007/11/21 16:53
  37. 작렬소년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어렷을떄...인데..ㅋ
    아버지 사업 부도나고... 집도 팔고..
    주택에서 좁은 빌라같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로 이사가고
    보일러도 기름값비싸서 잘 안떄고...
    어머니도 갑자기 미용배우시더니 미용실 하시구...
    그런 기억들밖에 없네요..

    2007/11/21 13:36
  38. 아으..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이네요.. 당시 전 하사관(지금은 부사관)이었으니 직업군인이었죠. 하지만 전역지원을 한 상태라 바로 다음해에 전역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전역취소를 할 수도 있었지만..나름 그땐 젊고 패기도 있어서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취소 하지 않았고, 전역을 했네요. 그리고 남은 대학 학기를 마치려는데 하핫.. 굴지의 H 자동차 서비스 다니시던 아버지께서 명퇴를 하시더군요. 다들 대기업에 계셨으니 퇴직금이나 명퇴금이 클것이라고 생각했고, 저 역시 그럴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금액을 밝힐 순 없지만 정말 몇달치 생활비..밖에..

    취업.. 당연히 더 힘들져.. 군대를 길게 갔다오다보니 이미 그전에 학점관리 안되어 있었던데다, 복학하니 3학년2학기.. 한학기만 더 하고 싶어도 학비나 그 이외 돈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그냥 그저 그렇게 졸업을 해야 했습니다. 아 빠뜨렸는데.. 전 결혼까지 일찍했었습니다. 학교 다닐때 했으니.. 어쨌던 아버지 명퇴에, 결혼까지 했는데 돈을 벌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고졸 만 뽑는다는 조그만 지역 납품업체에 학력 속이고(?) 연봉으로 천만원 받고 사회생활 시작했습니다. 나름 지방국립대 경영학과 나왔는데..ㅠ,.ㅠ 분명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때만 되어도 웬만한 4년제 나오면 갈 직장은 많았었는데..

    아무튼 잡초처럼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잡초처럼 이것저것 다 했던 것이, 어찌보면 다 제 재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지금은 나이에 비해 애도 많이 컸고, 넉넉하진 않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지금도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이글을 읽고 그때를 기억해보니... 어휴..지금은 행복 X 1만배 입니다.. ^____________^

    2007/11/21 13:37
  39. 김정근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환위기 터지던 97년 그해 대학 졸업했죠. 지방 4년제 대학. 그 자체만으로도 암울한데 외환위기는 우리 졸업식을 슬픔과 비통으로 만들었죠. 졸업후 약 6개월 놀았는데 그때 당시 말이 월급 안줘도 경력만 쌓을수 잇으면 취직해라였죠. 노는 사이 이력서는 수십통 썻고, 몇번의 취업도 했었죠. 쓰레기 회사들.........책 강매회사, 애들 졸업장보고 집집마다 전화해서 교제 파는거... 자판기 판매 영업. 그곳은 영업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고 노골적으로 사기치는 법을 가르치는 곳들이엇지요.... 그러다 취직된곳이 대전에 있는 한 중소기업..쥐꼬리 월급과 쉬는날이 없는 걸로 압축되는 회사. 근데 거기서 참 열심히 일햇습니다. 동료들과 동고동락 같이하고 그러다 보니 경력이 쌓여 대기업은 아니어도 꽤 이름잇는 중견 업체로 옮길수 있엇고 나름 거기서 제 인생의 직장생활에 꽃(?)을 피우다가(ㅎㅎ 너무 직장생활을 조금해서 그렇겠지요) 지금은 자영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네요. 이제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쌔끼들이 둘이네요^^

    2007/11/21 13:47
    • 그만  수정/삭제

      그렇죠. 월급 안 줘도 경력만 쌓을 수 있다면.. 했던 많은 분들이 있었죠. 저도 사실 그랬고 말이죠.. 그런데 이거 세상 만만치는 않더라구요. 그런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환경이 참 많더라구요.. 지금은 그때보다 행복한 거 맞죠?^^

      2007/11/24 21:39
  40. 오리보트  수정/삭제  댓글쓰기

    벌써 10년인가요..당시 중학교3년생 이었던 저는, 기업 연쇄부도로 인한 아버지 사업의 흑자부도 (나중에 회계학 시간에야 알았습니다)로 친구와 둘이서만의 쓸쓸한 졸업식을 했고..그때먹은 칼국수 아직도 생각나네요.. 고등학교 3년간 과외는 꿈도못꾸고 독서실과 단과학원도 눈치봐가면서 겨우 들었죠...강남애들은 고액과외 여전히 엄청 한다던데 대학이나 갈수있을까 했지만..그럴 때마다 부모님 생각하며 이 악물었습니다...덕분에 사람들이 5손가락 안에 꼽는 좋은 대학에 오긴했네요..근데 이젠 취업때문에 속이 탑니다...^^;

    2007/11/21 13:51
    • 오리보트  수정/삭제

      아, 고3 여름 때..독서실 끊어주는게 힘드냐고 어머니한테 대들었었어요...어머니 화내다가 우시고...저도 서러워서 뛰쳐나와 울었었죠....쩝...그 때만해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잘사는 친구집에 월세로 살았거든요..하지만 그때 그 기억들이 조금은 성장하게 해준것 같네요..여기 인생선배님들 글보니 다들 대단하십니다..

      2007/11/21 14:03
  41. 건축과  수정/삭제  댓글쓰기

    IMF로 저주받은 91학번입니다.
    98년 2월에 졸업했죠.
    그때,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들 많이 부도나고, 건설경기는 바닥이고, 부동산가격 폭락했죠.
    졸업동기들중 제대로 취업을 한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뽑는데가 있어야죠..ㅋㅋㅋ
    대학원간 동기들이 많고...
    IMF i am F 입니다.

    2007/11/21 13:55
    • 그만  수정/삭제

      정말 당시 면제로 일찍 사회 생활 시작해서 살아남은 분들에 대한 원망도 많았던 거 같애요.. 어찌됐든 다들 어렵고 힘들었기 때문에 함께 이겨내야겠단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2007/11/24 21:37
  42. 눈물이 주륵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글 보니 그때 생각이 납니다.
    조그맣게 하던 남편 사업 부도나고, 아이 낳은지 한달도 안돼 돈벌러 나갔지요. 남편은 ..빚 땜에 쫓겨다니고...밤낮으로 일해도 한달 70만원 안되는 돈으로 날마다 죽고 싶은 생각을 견디며 두 아이 눈물로 키우던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집니다. 아이 맡기는 비용 30여만원 제하면 분유값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더랬죠.
    굶지 않고 살아난게 기적같아요.
    아이들과 같이 자살했다더라는 뉴스가 남의일 같지 않았구요.
    언젠가는 나아 지겠지 하면서 사는데,,아직도 그때 진 빚이 남아
    힘들긴 하지만 그런대로 또 살아지더군요.
    후유증으로 찬바람만 불면 온몸이 바람든 것처럼 아프지만,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다 이겨낼수 있을것 같아요.

    2007/11/21 14:01
  43. 학주니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99년 졸업이었으니 꽤나 암담했죠.. -.-;
    엽기적인 잡지사 이야기..
    기대됩니다. ^^

    2007/11/21 14:01
    • 그만  수정/삭제

      제게야 엽기적인데.. 남들이 보면 어이 없는 시간이었을 거 같습니다..ㅋㅋ

      2007/11/24 21:36
  44. 97학번입니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댓글을 쭈-욱 읽다보니..IMF 저 대학교 1학년 때 터졌죠.
    그때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습니다^^::
    휴학하고 알바하는 친구들도 많았구.
    돈 아낀다고 도시락 싸들고 다녔으며, 졸업여행도 못 갔어요.
    그때 선배들 취업이 힘들어 함께 걱정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제가 올해 30인데요..
    여전히 상황은 별로 좋지 않고..
    취업하기가 어렵다기 보다는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같아요.
    제 친구들 다행히도 교원 임용 시험에 합격한 친구들 외에는
    대부분 비정규직.
    이제 비정규직이 대센가요?^^
    암튼 이 세대를 88만원 세대라고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에효.....빨리 좋은 시대가 왔음 좋겠어요^^

    2007/11/21 14:01
  45. 김민구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보니,그런 경험을 같이 해서 가슴 절절한 이야기들 많군요...
    저희 집도 부모님 젊은시절부터 어렵게 모은 돈으로 아파트 청약했고, 그걸로 전세해서 여관을 전세로 했는데, 이모든게 다 날라갔습니다. 이후 사실상 이별아닌, 객지 생활을 시작 했습니다.
    이제 제나이 32살에 서울에서도 조금은 안정적인 직장생활하고있습니다.
    에휴... 지금현재도 한국사회에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사건사고들.., 투표해서 뽑아 놨더니, 사기당한 기분....

    2007/11/21 14:04
  46. 쟤시켜알바  수정/삭제  댓글쓰기

    imf 때 97년도 대학교 1학년
    1년 마치자 마자 곧장 군대로 갔죠
    군대지원해서 갔는데 보통 기다리는데 6개월
    워낙이 많은 사람들이 군 입대를 했기 때문에
    그리고 사업하시는분들은 한강에 번호표 뽑고 기다리시는 분들도
    많았죠
    자살도 많이하고 그러셨죠

    2007/11/21 14:06
  47. 주부  수정/삭제  댓글쓰기

    십년전IMF때나 지금이나 숨쉬고 살기가 힘들만큼
    경재난에허덕이게하네요....
    대통령바뀔때마다 서민을위하고 중소기업을살리고 은행문을낮추고
    모두 헛소리인걸요....
    숨한번크게못쉬고 잠한숨제대로못자고 악몽에 시달려온이세월
    언제나끝이날려나...
    정치하는분들 언제 서민을위해 국민을위해 걱정한번하신분
    나와보시요

    2007/11/21 14:19
  48. 메이슨  수정/삭제  댓글쓰기

    98년 졸업했습니다.
    어찌보면 운좋았죠.
    저 역시 직업군인으로 군대에 짱박혔으니...

    2000년 전역 후 일자리는 꽤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처럼 전쟁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큰 어려움 없이 골라서 갈 수 있었으니까요.

    몇번의 이직과 실업생활을 저 역시 피해갈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정년보장되는 직종에 들어와
    살게 되었네요.

    참 그시절...
    월급 가장 적었던 달은 40만원 손에 쥔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한달 기름값에 불과한 돈인데.ㅋ

    2007/11/21 14:23
  49. 김박사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당시 고3이었는데 그 당시 아버지가 실직하시거나 명퇴하셔서 학교 안나오거나 상황이 안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영화 "타이타닉"이 개봉했었는데 금모은 돈보다 영화관람료로 나가는 돈이 더 많다는 얘기도 들었었구요..

    그만님..
    뒷얘기가 궁금하네요^^;;

    잡지사시절 이야기도 해주시면 어떨까 하구요^^

    2007/11/21 14:26
    • 그만  수정/삭제

      금 모으기... 인류 역사상 그렇게 슬픈 코미디는 없었죠.

      2007/11/24 21:32
  50. 김섭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땐 그랫지 나두 91학번인데...

    2007/11/21 14:38
  51. 두아이맘  수정/삭제  댓글쓰기

    97년이라...한달 월급가지고 시작한 한 커플..아이가 태어나고..잔업까지 죽어라 해주었건만 몇달치 월급 떼이고..그 덕분에 여기저기 손벌려 월세내고 먹고 살았던 기억..결국엔 물거품처럼 사라진 월급들 ㅠㅠ 정말 젊음 하나,사랑 하나 그 두가지로 살았었던 기억들이 남아있네요..

    2007/11/21 14:49
    • 그만  수정/삭제

      당시 상황을 악용해 임금 체불을 밥먹듯 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2007/11/24 21:31
  52.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친구 여자 95였는데 졸업을 imf비스무리한 시절에 졸업해서 거의 피똥쌋죠..우리 부모님은 티는 안내셨지만 은행 이자 막기 바빳고.. 어음받아논거 1억 휴지 쪼각 되고.. 대우 취업해서 좋아했던 선배 바로 그다음해 대우 날라가고 실업자 신세되고.. 근데 그때보다 그다음해 다음해가 더 어려웠던거 가까워요..주위에서 카드 돌려막기 하는 사람도 많았고..

    2007/11/21 15:06
  53.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주의 91학번으로 불렸던 선배들은 뭐하시는지 갑자기 보고싶어지네요..

    2007/11/21 15:08
  54. 그랬군요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지금이 그 때보다 못한거 처럼 떠드는 딴나라당 잉간들은
    다 어느나라 사람입니까? 추잡한 정치인들... 치가 떨립니다.

    2007/11/21 15:14
    • IMF  수정/삭제

      조중동문네 쓰레기 언론들이 더 문제예요ㅠㅠ

      2007/11/21 16:56
  55. 은장카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당시가 공무원셤은 쉬웠던 시절이죠.97년,98년,99년.
    그때만 해도 9급은 고졸응시자가 대부분이던 시절이었다고 하더군요.몇달만 공부해도 쉽게 합격하던 시절

    2007/11/21 15:24
  56. gingery  수정/삭제  댓글쓰기

    97년 한겨레조차 "국가부도"라고 호도한 것은 실망스럽습니다.
    기업들이 싼이자로 단기외화를 빌어와서
    장기설비투자를 제대로 안하고 돈놀이하다가
    빚어진 '기업부도'일 뿐인데....

    당시 말레이지아의 마하티르총리처럼 강단있게
    외자유출을 통제하였스면 온통 외국자본에게 팔려가는
    경우는 없엇슬 것입니다.

    실컷 '국가부도'라는 속임에 속아 기업을 살린다는 것이
    다들 외국기업이 되고
    이제 우리는 아이엠에프를 겪으면서
    남미처럼 외국자본의 밥이 되었던 것에 지나지 않지요.

    2007/11/21 15:59
  57. lswcap  수정/삭제  댓글쓰기

    캬. 엽기적인 잡지사 시절 얘기라..몇 번 들었던 것 같은데 다시 들어도 감동(?)적일 듯. 개인적으론 첫 번째(여의도 말구 ㅋ) 잡지사 들어가기 전에 취직하려고 발버둥치다가 잠시 들어갔던 이상한 회사가 생각남. 무슨 회사인지도 모르고 15일 정도 다니다보니 피라미드 비슷한 회사였다는. 쿨럭. 15일 만에 교육받던 다른 졸업생 솔저들과 모두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슬픈 기억이. 사실 그거보다 더 아팠던 건 아들 취직했다고 없는 돈에 양복 사주셨던 부모님께 더 죄송했지만...

    2007/11/21 16:05
    • 그만  수정/삭제

      뭐 즐겁지 않은 기억인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니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드네요..

      2007/11/24 21:29
  58. 굿글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와 경력이 비슷한 점도 있으시군요. ^^;
    IMF가 닥치기 전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 당시 기억은 저도 다시 떠올리기 싫군요. 돌이켜보니 그 때의 시련이 지금 성장의 계기가 된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_-

    2007/11/21 16:32
    • 그만  수정/삭제

      정말 악바리 처럼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2007/11/24 21:30
  59. 문제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나라와 김영삼땜시 울나라 많은사람들이 죽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이 생존해서 우리나라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것을 보면서 휴........

    2007/11/21 16:36
  60. 나그네  수정/삭제  댓글쓰기

    94학번.98졸업.졸업환송회도 대학교식당에서 하는 걸로 대체.
    졸업해서 대학원들 많이 갔지요.
    더 웃긴건 그네들이 졸업할때쯤 다시 경기가 나빠졌다지요.
    imf터지고 2년쯤 뒤에 경기 반짝 좋을 때를 지나쳐서
    졸업할때쯤 다시 바닥...
    수많은 기업들이 부도냈고 은행다니시던 아버지
    간부직이었던지라 대출 연대보증 서셨다가 그 사람들 빚 못갚고
    아버지한테 살인적인 이자와 함께 독촉...
    결국 집 다 날라가고 7년동안 온가족이 신용불량.
    카드사 전화...끔찍한 세월이었다.
    죽으란 법은 없는지 아버지 다니시던 은행주인이
    재산빼돌리려고 (세금안물기?) 주식을 아빠이름으로 해놓은 걸
    국세청서 전화와서 알았다.
    덕분에 파산신청도 안되고 아버지 - 은행주인이랑 딜하셔서
    온가족 빚을 탕감하였다.
    7년만에 벗어났다...
    신용불량은 아직 해제될렴 멀었겠지만
    휴대폰.전화...피하고 안받고하는 걸 떠나
    맘편하게 받을 수 있는거...
    너무 좋다...
    imf 진짜 끔찍하다...다시 생각하기도 싫지만
    지금 온 가족이 너무 행복하다...
    하나 더...imf 때 돈때문에 인간성들 다시 보이더라..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그때 다시 추렸다.
    그리고 가족끼리 많이 싸웠지만 또 많이 가까워졌다.
    힘들 땐 가족밖에 없다...원인제공을 했던 아빠지만
    결국 아빠가 해결했다...감사하다.

    2007/11/21 16:50
  61. 기억나네요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81년생 그때 고1이였는데 말이죠..
    2학년때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간다고 해서 들떠있었는데
    (지금 아이들이야 제주도 가는게 일도 아니지만^^
    당시엔 못가본 애들 많았구 거의 수학여행은 설악산이였죠..)
    IMF 여파로 인해 설악산... 철없던 시절이였기에 이유는 모르고 그저 너무 아쉬워 했어요

    그로부터 얼마안가 그런데로 잘 버티던 아버지 회사가 도산하면서 저희집도 직접적으로 체감을 하게 되었죠. 저희집은 4남매에 제가 첫째인데 부모님께서 참 막막해 하시던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아직 어린 형제도 많았고...(늦둥이가 지금 고1입니다.)

    아버지 사업이 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한참 일어나던 중이였어요.. 대전에 새로 개발되는 xx동에 아파트 사놓고 중학교 3학년때 (96년) oo동에 또 하나.. 그 집은 전세를 놓고 나름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근데 IMF의 여파로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 xx동 집팔고 고1때 00동으로 들어갔지요. 00동 집값의 배가 넘는 빚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버텨보시려 하셨다는걸 요몇년 전에 알았습니다. 당시는 그래도 겉보기에 살만해보였기에 전 수학여행 타령이나 하고 있었던거죠. 휴...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집에서 저희 부모님 생전 안해보신 신문배달, 우유배달을 새벽에 하시고 낮에 어머닌 일자리 구하러 다니시고, 아버진 택시운전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땐 왜그리 챙피했던지..철이 너무 없었어요..ㅠㅠ 그렇게 고2 시절이 지나가고 결국 직격타가 날아오더군요..이대론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남은 집 팔아 허름한 공장 인수비용 하나 남겨두고 전부 빚 갚고...제겐 암울했던 고3시절이 시작되었지요

    공장에 딸린 조그마난 방 한칸에서 6식구가 다 생활하려니 너무 힘들더라구요.. 밤늦게 공부를 하려해도 다른 식구들 수면에 방해되고.. 독서실 갈 돈도 없을것이 뻔하기에 달라고도 못했습니다. 솔직히 예민한 시기에 정말 버티기 어렵더라구요.. 결국 집을 나와 학교와 가까웠던 혼자 살던 이모댁에서 신세를 졌었어요. 서울대가 아닌 이상에야 서울권 사립대는 등록금과 하숙비등으로 꿈도 못꿨구요 무조건 지역 국립이였죠. 대학을 놓고 저와 아버지 간에 트러블이 심해져 지역 대학에 간 저는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차라리 일이나 하겠다며 아버지 속을 괴롭혔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스러워요. 지금은 4년동안 이일 저일 해보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갔어요. 아무래도 졸업장은 필요하더라구요. 괜한 오기로 제 인생이 너무나 돌아온것 같아 요즘은 아버지께 많이 죄송해요
    뭐 그 이후로는 차츰 빚도 갚아 나가고 아버지 공장의 제품들이 입소문을 타 많이 일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어렵죠..

    동생 둘은 아직 대학생이고, 저역시 이번이 졸업반이고, 막내는 고1에.. 생활비와 세금, 빚 이자갚기도 바빠 부모님이 버시는 돈은 그쪽으로나가고... 저희 형제들의 학비는 각자 알아서...장학금을 받던 아르바이트를 하던 조달하고 있죠.. 막내가 예고를 가는 바람에 막내학비는 저와 동생들이 어떻게든 만들고 있구요. 아직도 갚아나갈 빚은 많지만 그래도 많이 안정되어 가고 있는 집안분위기가 다행스러워요

    두번다시 이 나라에 그런 일은 안일어났음 좋겠어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한나라당이 말하는 그런 잃어버린 10년의 의미라기 보다 제게는 IMF로 인해 일어서느라 다툰 가족들. 속상했던 일들. 빚. 잃어버린 제 고3시절과 대학 신입생 시절.. 그 가운데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많아서 잃어버린 10년이예요..

    지나고 나면 모든 시절은 삶의 교훈이겠지만 과연 IMF 구제금융같은 일이 없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긴해요. 물론 철없이 아빠 속썩이던 못난 자식이 지금 댓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겠지만
    지금 나와서 자기네들이 잘낫다고 떠들어대며 경제를 살리겠다는 한나라당을 보면 너무 꼴보기 싫어요.

    졸업을 앞두고 조그만 사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차곡차곡 모아둔 돈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 하는데.. 이번 대선 대통령이 누가 될런지... 영세 사업자들도 돌아봐줄 수 있는 그런 분 뽑으려구요

    하하 쓰다보니 감정에 북받쳐 자세하게도 써놓았네요 ㅎㅎ
    위에 많은 분들 사연을 보니 제 경우는 그냥 푸념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어요^^

    2007/11/21 17:56
  62. 고돌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끔찍한 기억. 아버지는 명예퇴직 하셨고.
    나는 군대에 가야 했는데, 군대가 밀려서, (육군은 1년 기다려야 된다고 해서) 의경으로 들어갔습니다.
    IMF는 말이죠,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돈"이라는 것이 의도적으로 발생시킨 사건입니다.

    2007/11/21 23:08
  63. 행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그런 시절도 있으셨군요~ 그때 전 고1이였답니다;;
    힘들어하는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요.
    새삼 힘들다고 생각했던 지금 제 모습이 부끄러워 지는데요?^^;
    오랜만이에요 샘~ 잘지내시죠??^-^

    2007/11/21 23:59
    • 그만  수정/삭제

      하핫.. 고1.. 흠 머. 동시대를 살았었네요..^^ 잘 지내록 있습니다.

      2007/11/24 21:32
  64. ..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정말 말도 아니었죠.
    근데 우리국민들은 집단적으로 기억상실증상이 있습니다.
    지금이 IMF시절보다 더 어렵다라고 지랄하는 놈들이 꽉찼습니다.
    그 암울하던 군사독재시절도 그립다고 하는 새퀴들도 잔뜩이니 참 난감하죠.

    2007/11/22 01:18
  65. 문성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나..
    어쩌면 저랑 살아온 모습이 이렇게도 비슷하실까~~??
    제가 보험설계사를 했던 것은 아니고요~~(뭐..그거랑 비슷한 일...ㅋㅋ 근데 저는 적성에는 별로 안 맞았지만, 일은 잘 했어요..ㅋㅋ)
    나중에 또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겠어요...히히~
    덧글이 무쟈게 많은데, 덧글 하나 더 보태네요....^^

    2007/11/22 02:28
  66. ....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집의 IMF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2007/11/22 09:45
  67. 나우누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잊고싶은 기억이 요즘은 점차 되살아나는것같아 불안한 시절입니다. 근자의 경제상황은 그때처럼가는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특히 경제란, 중국의 경제위기는 더큰 시련을 안겨줄것같은 느낌이 요즘은 너무 오네요.. 10년전 그때 살아남기위해 직원들과 말그대로 발악하던 회사는 결국 무너지고 오로지 살기위해 몸부림쳤죠. 그뒤로 좀 좋아지는듯하다가 근래 3년간 내리 진창으로 치닫는 느낌입니다. 후...

    2007/11/22 09:48
  68. 화이팅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입니다.
    직장생활햐면서 힘들고 짜증날때가 많은데...효오~감사해야겠어요.

    2007/11/22 10:32
  69. 주딩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랑 비슷한 연배시군요.. 저도 그시절 학교를 졸업하고 언론사 시험에 실패한 이후.. 바로 IT 붐을 타고 이쪽 바닥으로 흘러들어와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역시도 IMF 수혜자인지 피해자인지 좀 헷갈리는 군요..^^ 공감가는 얘기였습니다.

    2007/11/22 13:27
    • 그만  수정/삭제

      뭐 수혜자로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요? ^^; 아무래도 당시부터 지금까지 계속 힘드신 분들은 세상에 복수하고 싶다는 '오기'가 많았던 거 같습니다.

      2007/11/24 21:34
  70. 천군  수정/삭제  댓글쓰기

    같은 시기를 지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쏟아지는군요. 그만님의 글도 잘 읽었습니다. ^^ 잡지사 이야기 기대할게요~

    2007/11/22 15:41
    • 그만  수정/삭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읽어보니.. 정말 눈물 나네요..

      2007/11/24 21:35
  71. 까칠맨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만님께서 욕보셨군요 ^^ 저도 96년부터 삼성생명에 근무했었습니다.전 사무직군이었죠...IMF 시절 지금의 와이프와 연애를 막 시작하는 찰나...회사에서의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니더군요...IMF 때문에 저도 저희 집안이 와해되는 위기를 맞았고...지금도 부모님들께서는 편치 않으신 상태이시죠... 그 놈의 보증... 부모 자식간에도 보증은 서지 말아야...ㅡ.ㅡ 암튼 이래 저래 전 삼성과 중앙일보를 왔다 갔다 하며 지금도 삼성의 우산아래서 녹을 먹고 있습니다. 먹고 살려니.....습...ㅜ.ㅜ 10년전...20년전 이야기를 저도 한 번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2007/11/23 23:44
    • 그만  수정/삭제

      아.. 보증.. 정말 이 나라 가정 파괴범 1호가 아닌가 싶습니다.

      2007/11/2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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