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무엇을 겨냥하는가

Column Ring 2013/12/21 19:58 Posted by 그만

확실히 IT 분야는 트렌드도 빠르고 새로운 용어나 개념에 대해 금새 익숙해지는 동네인 듯 싶다. 특히 요즘 들어서 비트코인과 관련한 이슈는 연말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올라올만큼 일반화 된 느낌이다.
물론 비트코인이 이슈화 되고 있는 수준이 여전히 개념적이고 몇 가지 떼돈 번 사례 정도로 회자되고 있지만 일단 이런 정도의 대중성이라면 금새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식은 피자를 비트코인으로 결제했는데 그 가치가 15억원이 됐다든가 독일이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인정했다는 소식과 함께 미국에서는 한 대학의 등록금 결제 수단으로 인정했다든가 정치 후원금 결제 수단이 됐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이제 너무 흔한 사례 처럼 보인다. 캐나다에서는 비트코인 전용 현금인출기도 등장했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은 역시 겉으로 드러난 이색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항상 이런 새로운 이슈가 등장하면 인터넷이 걸어온 혁신과 개방성, 그리고 기술자들의 기존 체계에 대한 도전의식이 잠재돼 있음을 느끼면 엄숙해지기까지 한다. 또한 예상 가능한 나쁜 시나리오가 분명해 보임에도 기존 체계의 비합리성을 뒤집는 것이 더욱 명분이 있다면 기술의 순수성은 의심받으면 안 된다는 명백한 가치 기준도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게 된다.

여기서 이미 우리가 십수년 동안 겪어 왔던 ‘가상 화폐의 역사’를 읊을 필요는 없겠지만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비트코인이 불러올 변화를 짐작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먼저 2009년에 시작됐다가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브리빗(Vreebit)이란 서비스가 있었다. 이 서비스는 여느 SNS 통합 서비스와 달리 각 서비스마다 갖고 있는 가상 화폐를 서로 다른 서비스의 그것과 교환해주는(환전해주는) 기능을 내세웠다. 예를 들자면 카카오톡의 초코와 싸이월드의 도토리를 서로 교환해준다는 발상이었다. 심지어 이렇게 환전하는 것 뿐만 아니라 물건까지 살 수 있는 교환 가치까지 가능하게 하겠다고 하니 새로운 경제권의 탄생 처럼 보였다. 엄청나게 많은 관심이 쏟아졌고 투자 열기까지 만들어졌으나 결론적으로 인터넷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수많은 서비스에서 현금을 지불하고 그에 해당하는 교환 가치를 서비스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와 가상화폐에 익숙해 있다. 하지만 그 포인트와 가상화폐는 현금, 실물화폐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른 바 캐시백 문제인데, 이런 점에서 또 다른 사례로 SK의 OK캐시백 같은 포인트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런 OK캐시백이나 항공 마일리지 등은 보통 '범용 마일리지'로 '준화폐'로서의 자격을 갖는다.

이는 전자금융거래법에서 ’OK캐시백’ 처럼 2개 이상의 업종에서 사용되고 발행자 이외 제3의 장소에서 사용될 수 있는 범용 마일리지를 ’준화폐’로 간주, 선불전자지급수단으로 규정했기 때무니다. 따라서 사용자의 마일리지는 해당 기업의 수익이나 자산이 아닌 부채로 계산되어 이 마일리지에 소멸 기한을 넣거나 기부나 다양한 행사를 통해 서둘러 소진하려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비트코인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미 수조원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게임 아이템은 어떨까.

리니지 같은 게임에서 아이템을 획득하고 이 아이템을 지닌 계정이나 아이템 자체를 남들과 현물로 교환하는 경우를 '아이템 거래'라고 한다. 여전히 아이템을 판매하는 경우는 괜찮지만 이용자끼리 시장을 이뤄 교환 가치를 매기고 이를 기반으로 아이템을 거래하는 것은 금지(업자에 의해)되어 있다.
지금은 아예 국회 내부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실종돼 있는 상황이고 대다수 아이템 거래 업체들이 미국과 중국 업체들에게 인수 합병돼 있는 상태다. 이제는 합법화시킬 수도, 그렇다고 불법화시킬 수도 없는 회색(Gray) 영역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에스크로(거래 확인시까지 지급 유보)와 같은 안전한 전자결재를 위한 장치는 업체들끼리 알아서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는 세금을 떼고 있다. 그래서 업계와 정부, 그리고 정치권 모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비트코인이 관심을 받으면서 다시 떠오르는 이야기가 바로 세컨드라이프의 린든 머니다. 세계적인 세컨드라이프 열기의 배경에는 비트코인 처럼 가상세계 안에서는 교환가치가 폭넓게 적용되었기 때문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세컨드라이프를 벗어나서는 린든머니의 가치는 적정하게 교환될 수 없었다.

비트코인에게는 발행주체와 수수료가 없고 익명성과 총통화량이 존재한다. 현대 금융이 만들어 놓은 체계와 반대다. 더불어 비트코인이 현물 교환 가치를 가진 이유는 싸이월드 도토리 처럼 권위 없는 사업자가 발행주체였던 기존의 가상 화폐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해소했다. 비트코인은 금본위제를 포기하면서 달러의 무한 발권력을 바탕으로 한 현대 금융 시스템과 국가 단위의 금융 거래 시스템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내 돈을 남에게 그대로 이체해주는 이유로 수수료를 떼어가는 은행의 역할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궁금하다.

세금과 금융실명제 때문에라도 우리나라에서 비트코인은 여전히 회색 영역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보이지만 이제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에서 정책적인 논의로 빠르게 이전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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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에 기고했다가 중복 아이템이라며 잘렸습니다. ^^; 한발 앞서거나 완전히 다른 시각을 보였어야 했는데.. 제가 소홀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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