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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피드레이서를 지난 금요일 밤 늦게 봤다.

워쇼스키 형제의 작품, 비가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한 작품, 달려라 번개호의 실사 영화화한 작품 등 다양한 미끼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다 내가 좋아하는 CG 듬뿍 처발랐다는 광고 문구에 떡밥을 덥썩 물었다.

긴 시간 순식간에 굉음과 뫼비우스의 띠 안에서 중력을 잊어 버린 차들의 속도감에 심취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긴 생각에 빠져버렸다.

제길, 내가 알던 모든 정보가 나를 괴롭혔다. 워쇼스키 형제라면.. 게다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이름도 어색한 '비(rain)'가 나오지만 않았어도, 더구나 내 추억 속의 그 만화만 아니었어도... 즐거운 킬링타임용 가족 영화로 손색이 없었을텐데.

마음 속 한편으로는 매트릭스의 깊이(서양인이 동양의 다채로운 철학을 이해하는 수준으로 보면 이해해줄만한)에 전혀 미치지 않았다는 불만이 폭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단순 대결 구도 그자체에 몰입되기 충분했고, 권선징악에 업그레이드 적들에 대적하는 순수 청년(거의 정신 세계는 14세 청소년에 가까운)의 성장 영화로 보면 충분하지 않은가.

영상도 그렇다. 엄청난 속도감 뒤로 흐르는 형형색색의 원색의 불빛들과 등장인물과 배경의 색채는, 매트릭스의 잿빛 미래에서 완벽한 탈출을 꿈꾼 워쇼스키 형제의 의도가 다분히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다 못해 이름이 '스피드'고 성이 '레이서'인 주인공은 흰색 유니폼에 흰색 차다. 이 단순 무상의 세계에 악의 색은 '칙칙한 무채색계열'이다. 신비로운 존재인 레이서 엑스(X)는 이름 자체로 설명이 충분하다. 게다가 그가 입고 있는 블랙 유니폼의 단순성이라니..

계속 보고 있자니 '레인'이 등장할 때 비라도 내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는.. 쿨럭(비는 태조 토고칸이란 극중 인물로 출연했다. 이야기 나온 김에 한자와 일본어가 교묘하게 배경으로 사용되는 가운데 한글이 등장하는 장면을 딱 하나 발견했다.)

스토리는 전형적인 일본식 재패니메이션 스토리구조다. 일단 권선징악은 둘째치고 주인공 주위에 뛰어난 조력자들의 배치와 함께 절대 악의 존재(그들을 갈아 마셔도 용서가 될만큼 그들은 악 그자체다)와 단순한 반전과 뻔한 위기, 해결 방식(몇 년 동안 반복해도 상관 없을만큼 '알고 있는 반전'이 기다려지게 하는 재패니메이션의 힘)이 돋보인다.

워쇼스키 형제의 이번 작품은 다분히 '애들용'이며 순수하게 '단순 스토리에 화려한 영상' 정도에서 멈췄다. 그들의 작품 세계에 대한 진보나 발전, 진화를 꿈꾸며 이 영화를 본다면 실망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정보를 잊은 채 영화에 몰입하고 나면 시원한 '펑키' '싸이킥' '네온' '사이버' 영화 한 편 봤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중간중간 졸려서 잠이 오면 자도 된다. 경주 장면만 봐도 내용은 충분히 유추 가능하니까. 비는 괜히 흥분하니 같이 흥분하지 말자구. 총 3부작이라고 하니 다음 편에서는 이 몸매만 멋진 사나이의 노래 실력이라도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

그나저나 워쇼스키 형제는 팀버튼의 색채감각이 부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재패니메이션에 심취한 쿠엔틴 타란티노가 부러웠던 것일까? 그냥 나 혼자 이들을 다 엮을 정도로 영화가 주체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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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블로그 주인장 그만입니다. 그만에 대한 설명은 http://ringblog.net/notice/1237 공지글을 참고하세요. 제 글은 CC가 적용된 글로 출처를 표기하시고 원문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로 퍼가셔도 됩니다. 다만 글은 이후에 계속 수정될 수 있습니다.
2008/05/13 02:11 2008/05/13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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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뷰] 스피드 레이서 (Speed Racer, 2008)

    Tracked from 스테판's Movie Story  삭제

    "마하 고고고". 국내 방영명 "달려라 번개호".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다고 하지만, 저는 위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닌지라 그와 관련해서 이 "스피드 레이서"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전무합니다. 즉, 제게는 그저 "스피드 레이서"라는 영화 한 편일 뿐이지요. 영화 "스피드 레이서"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자동차 레이싱 오덕후 가문인 레이서 가의 차남 스피드 군은 죽은 형처럼 레이서가 된 후 최고의 기대주로 떠오릅니다. 그런 그의..

    2008/05/13 07:44
  2. 스피드 레이서 - 워쇼스키 형제의 첫번째 가족영화

    Tracked from 페니웨이™의 In This Film  삭제

    여러분들은 '레이싱 애니메이션' 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는가? [이니셜 D]라던가 [사이버 포뮬러]가 먼저 생각나는가? 그렇다면 아마도 당신은 비교적 신세대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달려라 번개호]가 생각나는가? 그렇다면 아마도 필자와 같은 (구)세대일 가능성이 높다. [달려라 번개호 (원제: 마하 Go Go Go)]는 1976년 TBC방송을 통해 한국팬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내일의 희망안고 번개호는 간다~"로 끝나는 주제가를 기억하는 분들..

    2008/05/13 11:27
  3. [영화] 스피드레이서(Speed Racer) - 워쇼스키 감독들의 디즈니 스타일의 가족영화

    Tracked from [wiz] 2M Story  삭제

    영화장르 : 액션 상영정보 : 2008년 5월 8일 개봉 등급 : 12세 관람가 감독 : 앤디 워쇼스키, 래리 워쇼스키 출연배우 : 에밀 허쉬(Emile Hirsch) - 스피드 역 크리스티나 리치(Christina Ricci) - 트릭시 역 정지훈(Rain) - 태조 역 매튜 폭스(Matthew Fox) - 레이서 X 역 수잔 서랜든(Susan Sarandon) - 맘 레이서 역 존 굿맨(John Goodman) - 팝스 레이서 역 킥 거리(Kic..

    2008/05/13 14:49
  4. [92%]스피드레이서, 워쇼스키형제의 색칠공부?

    Tracked from Plan9 Blog  삭제

    어딘가에서 "워쇼스키형제의 색칠공부에 불과했다."같은 감상기를 봤을때 그 영리한 단어선택 덕분에 '정말 재미 없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을 했지만 나는 워쇼스키형제의 영화와 궁합이 참 잘맞나보다. 끝나고 한동안 엔딩의 그 기분좋음이 지속된걸로 의심없이 만족도 92%를 적었다.오늘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피곤해서 그런지 슬슬 잠이오기 시작하고 '끝내 졸겠구나'생각했는데 중반부터 신나는 장면들이 나오면서 잠이 확깼다. 정지훈(비)의 비중도 생각보다 컸다....

    2008/05/14 08:32
  5. 현란하고 또 현란하고 현란하도다! 스피드 레이서(Speed Racer)

    Tracked from 라디오키즈@LifeLog  삭제

    정지훈의 출연과 워쇼스키 형제의 연출로 화제가 됐던 영화 스피드 레이서(Speed Racer). 기대와 우려를 한몸에 받았던 영화가 개봉한 직후 예상대로 여러가지 평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국내를 비롯한 북미의 개봉 스코어가 시원찮다는 객관적인 흥행 결과를 거론하며 기대 이하였다는 평가부터 상상하던 만큼의 놀라운 영상 혁명을 보여줬다는 긍정적인 평가까지 극명하게 갈리는 평가들이 이어졌는데... 영화를 볼 예정이었기에 가능한 이런 평가들은 멀리한 체..

    2008/05/1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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