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속 상투적 표현 '클리셰'

Ring Idea 2009/10/05 02:55 Posted by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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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짤방공작소 서비스로 기존 신문을 패러디할 수 있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cliche 라는 키워드를 포함해 이런 저런 상투적인 표현과 뻔한 이야기 전개 사례를 적어 놓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재미있는 표현이 많이 등장했는데 꼭 문구가 아니더라도 이야기 흐름도 '클리셰(Cliche)'에 포함되는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출생의 비밀', '자동차 사고', '기억상실증', '3각관계', '남자 같은 강한 캐릭터의 여자가 결말 부근에서 여성성이 한층 부각된다' 등의 이야기 흐름에 뻔하게 등장하는 이야기 구조 역시 클리셰라고 할 수 있다.

클리셰란 이렇게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표현이나 이야기 구조를 설명할 때 쓰는 말이다. 풍경화에서 멀리 산이 보이고 가운데 물이 있고 앞쪽에 큰 나무가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이라거나 음악의 배경음으로 반복되는 샘플링 역시 클리셰이며 연설문 앞의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존경하는 ㅇㅇㅇ의원님' 등의 정치인들의 수사 역시 클리셰의 반복되는 사례다.

즉, 클리셰는 그 자체로 '판에 박힌', '뻔한', '상투적인', '전형적인' 표현이나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많은 분야에서 전형적이고 뻔한 표현이 사용되는 것은 그 문화의 누적된 가치이므로 함부로 비하하거나 따라했다고 격하해선 안 된다. 언어 자체가 전형적인 표현의 모음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클리셰가 자주 사용되는 곳은 누가 뭐라 해도 수많은 짧고 단일한 이야기가 무한 반복되는 언론 기사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살펴보는 클리셰는 언론 기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들이라서 매우 익숙할 것이다.

언론에서 사용되는 클리셰만 익숙하게 사용하면 독자들에게 좀더 편하게 읽힐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물론 문장이 딱딱해지고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지 않는 말이라서 어색할 수 있지만 의외로 읽는 입장이 되어보면 쉽게 읽힌다. 너무 빤해서 미리 예측이 되기 때문에 편하게 읽히는 것이 클리셰의 장점이다.

언론 보도 기사 속 클리셰를 살펴보고 익숙한 표현 속에 숨은 기자들의 '의도'나 '심리'를 살짝 엿보기로 하자. 물론, 여기서 살펴볼 식상한 보도기사 표현 뒤에 간간히 등장하게 될 숨은 기자의 심리 분석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소회에서 나온 것이어서 보편적이라거나 누구에게나 해당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단순히 재미로만 봐주기 바란다.

▶ 최근, 요즘...
사례 2~3개, 그리고 동원되는 문구다. "요즘 들어 ~이 인기다."라는 리드문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으며 최근 들어서는 "직장인 A씨는 ~" 식으로 가상의 인물을 현장감 있게 전달하기 위한 스토리텔링도 종종 쓰인다. 이런 기사에는 보통 끝 부분에 교수나 공공기관, 또는 무명의 네티즌이 등장해 왜 이런 현상이나 트렌드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코멘트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다.

▶논란, 확산
대부분의 경우 진짜로 논란이 되고 확산되는 사건이나 현상이 대부분이지만 억지로 기자가 자기 환상에 빠져 이런 제목을 쓰는 경우가 많다. 또는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하고 찬반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기계적인 중립성의 도구로 '논란'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영이 사건, 사형제 존폐 여부 논란" 등으로 사건의 본질보다 이런 저런 논란으로 확대시키려는 언론사들의 무의식이 담겨있기도 하다.

▶지난~
일상 생활에서 '예전에~' 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을 기사에선 꼭 '지난 5월' 식으로 이야기 한다. 그저께라거나 내일 모레 등의 시제 단어는 막연한 감을 주기 때문에 시간을 지칭하는 어구로 하루 지난 어제 일이라도 '지난 4일' 식으로 표현할 때가 많다. 또는 과거 사건이나 상황을 설명할 때도 '지난~'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는 것(이다). ~는 셈(이다).
해설에 가까운 어구에 종종 등장하는 것으로 '~하는 거 같아', 또는 '결국 ~그거 잖아' 식의 말을 문장으로 바꾸면 이런 어구를 사용하게 된다. 뒤에 (이다)를 빼는 것은 문장의 단조로움을 막고 전체 기사의 흐름에서 쉬어가야 할 부분에 종종 사용되는 생략 방법이다. 물론 가끔 써야지 마구잡이로 쓰면 기사 전체가 신뢰를 떨어지는 매우 감정적인 상태로 비쳐질 위험이 있다.

▶선보였다. 발표했다.
보통 일상에서 '오픈했다', '출시했다', '나왔다', '런칭했다' 식의 말을 좀더 기사다운 표현으로 쓰게 되면 '선보였다'나 '발표했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게 된다. 가장 손쉽고 익숙한 표현인데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기업의 새로운 상품은 물론 뭔가 '새로운 것'을 대중 앞에 처음으로 내보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어체에서 쓰이는 것으로 일상생활에서는 자주 쓰이지 않는다.

▶~에 따르면,
기사에서 매우 중요한 어구로 이 어구가 빠지면 기사의 출처나 코멘트의 출처가 사라지게 되어 기자가 제멋대로 쓴 것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출처 표시와 인용을 위한 '~에 따르면' 어구는 기사에서 반드시 필요한 어구다. 사람이든 조직이나 기업이든, 또는 책이나 타 보도 매체든 출처의 대상은 가릴 필요가 없지만 잡지 기사를 제외한 대중 매체에서 한 기사 안에 여러 곳의 출처가 산발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는 것으로 보인다. ~ (귀추가) 주목된다.~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 문장들은 객관적인 표현을 빌은 기자의 주관적 가치 판단이 개입돼 있음을 암시하는 문장일 수 있다. 사건이나 현상을 해석해주거나 '왜' 부분에서 모호한 원인과 맞닥뜨렸을 때 정확한 '이다'라는 표현을 하기 힘든 경우에 이런 표현을 쓰게 된다. 특히 '주목된다'는 표현은 일상 대화에서는 그다지 많이 쓰이는 표현도 아니지만 기사에서는 참 많이 나온다. 아마도 기자가 '주목하는' 대상 사건이나 인물이나 현상이 '주목되길'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라고 주장했다. ~"라고 말했다. ~"라고 지적했다. ~"라고 전했다. ~"라고 강조했다. ~"라고 반문했다. ~"라고 평가했다. ~"라고 설명했다. ~"라고 반문했다. ~"라고 덧붙였다. ~"라고 전망했다(내다봤다).
기사에는 객관성을 담보하거나 직설적인 인용문구를 위해 겹낫표(「」『』)나 따옴표('' "")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 들어서 해설보다 직설적인 문구 인용을 위해 따옴표가 많아지는 추세다. 특히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연예 관련 기사에서 지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방영 내용을 요약해주는 기사라든가 아예 타 언론사의 보도 내용을 요약 보도하는 내용, 또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당사자들의 공격적인 발언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때 한 기사 안에 여러 개의 인용 문구를 사용하게 되는데 모두 '~"라고 말했다' 식으로 끝내면 밋밋하고 문장 구조상 문제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서술어를 동원하게 된다. 이런 서술어들은 보통 대부분 문어체에서나 쓰이는 상투적인 어구들이다.

▶한편
단순히 문장의 흐름 전환을 위한 용도로도 사용되지만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거나 사건의 파급 효과를 설명하기 위한 전환 효과로도 사용된다.

아래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언론사 기자들이 자주 쓰는 상투적 서술어들다.

▶~ 여부가 달려있다.
▶~한 바 있다.
▶~(비난, 찬사)가 쏟아졌다.
▶~는 지적이 많다.
▶~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에 그쳤다.
▶~할 방침이다.
▶~을 예고했다.
▶~임을 시사했다.
▶~ 엇갈렸다.
▶~ 우려된다.

이외에도 기사에서나 가능한 상투적 문어 표현들은 의외로 많다. 반면 이런 표현을 적절히 사용하면 블로그 글이나 논술 등에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객관적인 인상을 받게 하거나 최소한 감성보다 이성에 소구하는 글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이들 표현은 가식적이고 솔직하지 못하며 자못 진지해져보이고 억지로 객관적인 척 하기 딱 좋은 표현이다. 따라서 이런 표현들을 사용한 기사는 읽는 이가 조금만 신경 쓰고 읽으면 손쉽게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자기의 편향된 의견을 객관적인 척 강조하기 위해 기사문 형식을 도용하는 유치 찬란한 언론사들의 기사 작법은 화가 날 정도다. 요즘 기사 작법만 배웠지 진솔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모르는 기자들이 넘쳐나면서 생기는 현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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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블로그 주인장 그만입니다. 그만에 대한 설명은 http://ringblog.net/notice/1237 공지글을 참고하세요. 제 글은 CC가 적용된 글로 출처를 표기하시고 원문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로 퍼가셔도 됩니다. 다만 글은 이후에 계속 수정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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