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1Q84에 대한 미안함

Ring Idea 2009/12/09 01:14 Posted by 그만
1Q84 1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1Q84 2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정말 오래 걸렸다. 두 권을 다 읽을 때까지. 그리고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은 뒤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단번에 읽었어야 했다. 한번에 입 속에 넣고 우물우물하며 뒷 맛을 느끼는 미더덕 처럼 후딱 읽고 치웠어야 했다. 그래야 도대체 무라카미 하루키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그리고 그 안에 숨은 이야기, 그 안의 상징들, 다양한 인물과 정황 묘사가 현실과 어떻게 짝을 이루는지 문득문득 되짚어 봐야 했다.

어이 없게도 난 이 소설을 지나치게 상징으로만 해석하려 했다. 도전했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좋다고들 하니까 일단 사놓고 차례대로 읽은 것이다. 그리고는 마치 밑줄 치며 고전을 읽고선 느낌 없이 고대 언어가 현대 언어로 어떻게 바뀌는지 화살표를 그려 넣는 학생 처럼 맛 없이 읽었다.

소설을 참고서 처럼 읽으니 당연히 맛이 없을 수 밖에...?

... 사실 핑계다.

남들 다 맛있다고 하는데 내 입맛에는 안 맞아서 아마도 너무 뚝뚝 끊긴 채로 출퇴근 독서용으로는 맞지 않았음을 항변하고 싶었나보다. 두 권을 통틀어 1/3은 지루하게, 1/3은 흥미진진하게, 1/3은 다시 짜증날 정도로 지루하게 읽었다.

1Q84는 내게 맛 없는 소설이었다. 솔직히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1/3쯤 읽다가 '뭥미' 하며 옆으로 치워두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라니까 대문자 Q가 왜 9와 더 가깝게 보이는 소문자 q로 표현되지 않았는지 고민하면서부터 난 이 소설을 잘못된 소스에 빠트려 버린 고기를 구워 먹듯 떫더름한 느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어지간히 이러쿵 저러쿵 극찬을 아끼지 않는데 솔직히 유명세에 그냥 경도된 것은 아닐지.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남들이 다 괜찮다고 하는데 나만 이상한가? 내가 찾지 못한 무언가가 또 있나?'라는 생각에 서평을 뒤적이고 있다면 안심하시라. 내게도 맛 없는 소설이고 빠르게 읽고 나서 그냥 책꽂이 꽂아 놓고 한 6개월 정도 있다가 '아, 저런 소설도 내가 읽어봤지' 하면 되는 소설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든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팬층이 워낙 넓은지라 이 소설이 맛 없고 개인적으로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면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불편해 할지 모르겠다. 다른 서평들 처럼 괜한 기나긴 어려운 이야기 덧붙여 가며 온갖 지적 허영으로 덕지덕지 어려운 용어들(예를 들면 이드와 에고 따위? --;)을 동원하지도 못하니까 괜한 트집 잡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내가 애플의 국내 AS가 그지 같다고 말하고 나서 '애플까'로 평가 받는 것 처럼 말이다.

뭐, 이 책에 푹 빠지면 온갖 상상력을 동원할 수는 있겠지 싶다. 다만 이렇게 불편하고 선명하지 못한 우윳빛 유리창 처럼 쓰여진 소설은 다시 말 하지만 내 취향 아닌 것 뿐이다. 만일 하루키 팬이라면 오지랖 넓은 어떤 연구회(무라카미 하루키 문학 연구회라고 한다)에서 내놓은 '무라카미 하루키 1Q84를 말하다 : 상실의 시대에서 1Q84까지 그의 문학에 관한 담론' 이라는 책을 덤으로 읽어보시던지. 말리진 않겠다. 물론 난 절대 그러고 싶은 맘 없지만.

혹시라도 지금부터 이 책에 도전(?)하고 싶다면 일주일을 넘기며 읽지 마시길. 가급적 단숨에, 주말 동안 시간 내서 후다닥 읽고 나서 진한 여운을 느껴도 되고 아예 시덥지 않은 상징 덩어리 소설 하나 읽었구나 하며 잊어버려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다.

누군가 말하는데 1Q84 3권이 기다려진다고. 미안하지만 ... 맙소사다. --;

혹시라도 '문학을 모르시나본데...' 라고 댓글이 달리길 기대하고 있다. 답해줄 말이 있으니까. '미안하다. 난 문학을 모른다. 그냥, 문학을 즐기고 싶은 독자일 뿐. 학력고사 이후로 지금까지 그래왔다. 다시 문학을 줄 그어가며 온갖 상징물과 현대 역사를(그것도 일본의 --;) 되짚어가며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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