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제는 유럽이다

Ring Idea 2009/06/05 10:33 Posted by 그만
이제는 유럽이다 - 6점
이준 필립 지음/교보문고(단행본)

쉽게 말하자면, 클럽축구, 에펠탑, 유럽연합, 독일의 명차 정도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 유럽을 한꺼풀 정도 더 벗겨준 책이다. 유럽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설득력 있게 전달한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유럽이란 나라가 기묘하게도 멀게 느껴지는 우리네 정서에 '유럽은 말이야'라고 이야기해주는 데에는 성공했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미국과 일본, 중국 정도만 관심의 범주에 두고 있는 마당에 유럽의 정서란 것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전세계인의 모든 취향을 맞춰준단 말인가.

"Dynamic Korea", "Strong Korea", "Pride of Korea." 아마도 이런 구호들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중략)...아마도 한국은 이러한 구호들을 통해 스스로 위안을 하거나 자국이 강하고 견고하다는 확신을 하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구호들이 눈길을 확 끌고 강렬하긴 하지만 뉘앙스와 절제에 익숙한 유럽인들에게는 아주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강력하고 자극적인 문구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독특한 위치를 알리는 편이 유럽인들에게 더욱더 친근감을 줄 것이다.
-<이제는 유럽이다> 이준 필립, 251p
사실 다이내믹 코리아라거나 하이서울이라거나 한국 전통복장으로 부채춤을 추는 것으로 세계에 우리나라를 각인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80년대 군사정권이 마련해준 축제 '국풍' 이래 계속 되어온 우리의 홍보방법인 셈이다. 물론 이에 대한 거부감은 우리들 안에도 존재한다. 한복을 일년에 한 번도 안 입는 친구들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상황에서 무엇이 '우리'인지 고민하고 있는 한국적 현실에서 우리끼리만 만족하는 홍보방법은 도대체가 바뀌질 않는다.

저자는 폭넓은 지식을 통해 유럽을 한국인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역사 이야기부터 지리, 정치, 인물에 이르기까지 작은 유럽 백과사전을 보는 것만 같다.

여유로운 현실을 즐기려는 유럽의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챗바퀴 돌듯이 살아가는 바쁜 한국인들을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유럽과 한국이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점(고령화)에서는 공통점이고 자국 시장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 노동유연성에 대한 본질적인 사회적 갈등 역시 비슷한 구조를 지닌다. 어느덧 유럽은 한국에게 있어서도 제 2의 교역 상대국이 되었는데 서로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저자의 안타까움이 책 곳곳에 묻어나온다.

저자는 인도와 중국의 거대 시장의 기지개에 늙어가는 유럽 대륙이 긴장하고 있다고 말해주면서 한국의 포지셔닝이 여전히 어정쩡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게 현실이다. 한중일을 구분해야 할 이유가 유럽인들에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설령 한국을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한국은 유럽인들에게 '배타적'인 사람들로 비쳐진다.

한편, 유럽 기업들이 한국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막연하다. 유럽 기업들은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려는 계획을 짤 때, 한국을 잘 떠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한국은 외국 기업의 진출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중략)...그런데 1997년 불어 닥친 금융위기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로 한국 정부는 긴급하게 외국인 투자를 허용할 수 있도록 법을 대폭 수정했다.
...(중략)
하지만 한국이 간혹 너무 배타적이라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다...(중략)...하지만 유럽기업의 대표들은 한국의 수준을 고려할 때 배타성이 강한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한국이 좀더 매력적이고 글로벌한 시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다.
같은 책, 233, 234p
유럽인들이나 한국인들이나 여전히 역사적인 전통과 자문화의 우월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국을 위주로 한 현대서양문명에 대한 부러움과 피해의식을 함께 갖고 있다는 점에서 상호 배타적으로 비쳐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유럽을 단순하게 화려한 여행지로 다루거나 고색창연한 전설의 나라 정도로 조망하고 있는 책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이 책은 단연 현실적이고 현대적이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책이다.

하지만 책 내용 자체가 그다지 실용적이진 못하며 유럽 대륙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지나치게 친절하게 설명하려는 시도로 인해 내용자체가 산만해져버리는 함정에 빠진 느낌이다. 더구나 책 곳곳에서 발견되는 비문과 오타, 오기는 번역서 아닌 번역서의 편집 실수로 치부하기에는 아쉽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미국식의 과장되고 사명감에 가득 찬 번역서나 일본식의 교과서적이고 정리가 잘 돼 있는 참고서식의 번역서와는 달리 '이 책은 유럽식인가' 싶은 느낌을 갖게 할 정도로 산만하게 전개되는 방식의 책이어서 읽는 내내 약간 어색했다.

책 겉표지에 있는 정명훈 지휘자가 평가한 내용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유럽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미래 대안이 될 유일한 대륙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란 부분에는 절대 동감할 수 없다. 이 책은 유럽을 본받으라고 쓴 책이 아니라 유럽을 이해하라고 쓴 책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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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블로그 주인장 그만입니다. 그만에 대한 설명은 http://ringblog.net/notice/1237 공지글을 참고하세요. 제 글은 CC가 적용된 글로 출처를 표기하시고 원문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로 퍼가셔도 됩니다. 다만 글은 이후에 계속 수정될 수 있습니다.
2009/06/05 10:33 2009/06/0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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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래 유럽이었다 : 이제는 유럽이다

    Tracked from 오선지위의 딱정벌레  삭제

    이제는 유럽이다 지금의 유럽은 그들 나름대로 애증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유럽'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고자 한다. 미국에 대응하기 위하여 연합체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한 유럽에 대하여 한불상공회의소 이준 필립의 회장이 소개하고 있다. "위기의 시대, 새롭게 떠오른 대안 '유럽형 모델' 유럽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찰하는 최고의 책"이라는 책 소개 카피는 맞지 않다. 그저 우리가 유럽에 대하여 좀 더 아는데 도움을 주는 개요서로서의 역할을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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