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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영국 경제학자 그레샴이 말한 것으로 잘못된 화폐가 좋은 화폐를 몰아낸다(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는 의미다. 뭐 경제학적으로 깊이 있게 논의할 생각은 없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이렇게 정리된 용어는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합리적으로 생각할 것만 같지만 이상하게도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 안 좋은 선택을 반복적으로 수용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일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이 말이 떠오르게 된다.
내가 언론사 기자로 일할 때였다. 당시 윈도우 비스타가 나올 즈음이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대대적인 런칭 행사를 기획하고 있었다. 사전에 기자들에게 윈도우 비스타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7을 설명하기 위한 행사에 기자들을 초청해 보안 기능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7이 2006년 11월 쯤 출시되고 윈도우 비스타가 2007년 1월 말 정식으로 출시됐다.
이 때 언론들의 기가 막힌 문제제기들과 업계의 반응, 그리고 정부의 반응을 정리하면 이러했다.
언론 : 윈도우 XP로도 충분한 회사가 많은데 굳이 비스타를 누가 구입하겠는가. 인터넷 익스플로러 7을 설치하면 국내 인터넷 회사 레이아웃이 망가지는 경우도 있을텐데 이에 대한 대비도 있는가.마이크로소프트가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니라 업계와 정부가 잘못하고 있었던 일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따지고 있는 셈이었다. 이러한 웃지못할 상황 속에서 한 쇼핑몰 업체는 아예 윈도우 비스타에 내장돼 있는 보안 강화 기능을 꺼두고 쇼핑할 것을 안내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업계 :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안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의 인터넷 업계 수익성 악화를 방관하고 있다. 액티브엑스에 의존하는 게임 업체와 포털 업체, 그리고 다양한 인터넷 솔루션 업체들이 추가 비용 부담을 안게 됐다.
정부 : 정부 기관 홈페이지와 금융 기관 홈페이지의 기능 작동에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 소비자들은 자신이 자주 이용하는 곳의 기능 실행 여부를 확인한 다음 이용해달라는 당부를 했다. 더불어 윈도우 XP의 지원 연장 여부를 마이크로소프트사와 협의중이다.
2007/02/10 비스타 호환성 문제 임시 조치법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와 인터넷 익스플로러에게 점령당한 한국으로서는 당연한 걱정 처럼 보였다. 핵심은 액티브X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이었고 공적 기관의 보안 강화를 위한 조치가 지나치게 민간 조직과 기업의 편의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액티브X에 대한 문제제기는 링블로그에서도 꾸준히 해왔다.
2008/06/25 한국 인터넷 후퇴시키는 요인 10
2007/10/22 한국 웹, IE 종속 [폐쇄형 공인인증서 한몫]
2006/04/26 IE7 기사에 대한 반응..
2005/12/12 "액티브X 함부로 '예' 누르지 마세요"
혹자는 '액티브X를 그럼 쓰지 말라는 거냐'며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고 액티브X 개발자들과 액티브X를 통한 솔루션으로 돈을 벌고 있는 중소 보안 회사들을 모두 망하게 할 작정이냐고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처럼 보안이 편하고 잘 된 금융회사들도 없다는 말과 함께.
업계를 오랫 동안 취재해왔던 경험에 비춰서 액티브X란 기술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이를 이용한 사업자들에게 이 기술을 쓰지 말라는 것은 어불성설 처럼 보여져서 강하게 주장하지 않고 미적거린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2005년 우리나라에서 재미있는 사건 하나가 생겨난다. 김기창 고려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주도한 관공서의 공인인증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와 편향된 기술적 보안 대책을 수정 보완해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이었다.
2006/08/28 웹표준 무시한 정부, 누리꾼에게 소송 당한다
바로 오픈웹(http://openweb.or.kr/) 운동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후 두 번의 패소를 당한다.
소송을 진행하기 전, 김기창 교수를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의 눈빛은 결의에 차 있었고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가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이란 책에서도 밝혔듯 그는 데비안 리눅스를 쓰면서 새로운 대안 운영체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후 우분투에 이르러서는 웬만해서는 불편함 없이 인터넷과 업무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 웹에서만큼은 (게임이야 하지 않는다고 치고)은행 사이트에 들어가서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야 하고 은행별로 몇 군데 돌아다니고 나면 똑같은 기능을 하는 액티브X 수십개가 깔리는 이상한 현상을 이해할 수 없어 했다. 더구나 '아니오'를 누르면 아예 금융권 사이트 안에 있는 게시판 글 조차 열람이 안 되는 상황에 분개했다.
물론 초기 웹에서 미국이 128bit 암호화 표준 기술에 대해 공개하지 않아 독자적인 SEED 방식의 128bit 변형 암호화 기술을 사용해야 했다는 정황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모든 웹브라우저에서 표준 방식의 https 프로토콜을 이용한 128bit 보안 접속 기술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금융감독 기관은 민간 은행들이 설립한 임의단체인 금융결제원을 통해 액티브X를 통해 프로그램을 따로 설치해야 하는 공인인증서 업무를 위임한 결정에 하등 문제가 없다고 우기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불편한 진실에서 출발한다.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은 내 대신 누군가 나도 원하는 무언가를 함께 주장해줄 때의 속시원함이 느껴진다. 비단 액티브X 의존성에 대한 문제제기 뿐만 아니라 robot.txt를 통한 웹 검색 접근을 차단하는 관공서의 홈페이지, 그리고 hwp 문서 규격이 공개돼 있지 않아 벌어지는 기가 막힌 국수주의적인 국내 IT 행태와 국내 보안 업체들의 몰상식한 기만 행위가 적나라하게 까발겨진다.
2007/11/25 자료 : robots.txt로 검색 막은 정부 사이트
솔직히 IT밥을 먹으면서 살아온 세월이 만만치 않다면 지금의 악순환 상황에 분개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한국의 웹이 이미 갈라파고스 섬 처럼 독자적인 진화와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더불어 웹 검색 기술이 없어서 DB를 사다가 검색을 돌려 놓고 자신들이 플랫폼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자사 DB로의 검색을 차단시키는 국내 포털의 기가 막힌 행태도 어이가 없다. 이통사가 여전히 무선 인터넷 망을 쥐고 놓지 않는 것도 불만이다. 사실 더 맥 빠지는 것은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자괴감 넘치는 자위와 주변의 위로가 지금껏 한국 웹을 지배해온 정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구할 수 없는 황폐한 섬이 되기 전에 이제 뭔가 바뀌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한 번은 꼭 읽어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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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0 00:50
2009/08/10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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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을 담은 책이 나오기까지 했군요.
2009/08/10 03:28언제나 이 비정상이 바로잡힐까요...
양화가 무엇이었는지도 기억 못하기 전에 바로잡아야 할텐데 말이죠.
2009/08/10 23:17김기창 교수님이 책을 내셨군요.
2009/08/10 08:59'내 대신 누군가 나도 원하는 무언가를 함께 주장해줄 때의 속시원함이 느껴진다.'
아직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저 대목이 와닿네요.
얼른 읽어봐야겠습니다.^^
15000원이란 책값은 좀 의아하지만 충분히 읽어볼만하고 함께 흥분해볼만 합ㄴ디ㅏ.
2009/08/10 23:17트윗이나 어느 게시판을 보아도..많고 많은 주제가 책과 연관이 많네요..
2009/08/10 11:19책은 인터넷의 게시물이나 자료보다 유행과 느리고 지루한 거라고 생각하는
제 생각이 너무 늙었나봅니다^^; 지금이라도 현실문제를 담는 책들을 많이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얼른 오픈웹의 시절이 찾아오길;; (파이어 폭스가 좋아요^^)
개인적으로 블로그를 하면서 더 책에 빠져 사네요. ^^
2009/08/10 23:18패쇄적인 한국... 과거로 복귀
2009/08/10 11:57폐쇄적이라기보다 자기 중심적이란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2009/08/10 23:19"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표현 적절하십니다. 구축이란 말이 좀 어려워서 그렇지만 현실세계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비합리성을 아주 잘 설명해 주는 말이죠. 책을 읽고 있는데요. 앞으로 벌어질 소송이 한국이 IT가 갈라파고소군도가 아닌 혁신의 기지로 거듭날 수 있는 제도적 트리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9/08/10 13:04책에 강한 주장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괜히 중립적인 척 객관적인 척 하는 것 자체가 우습거든요.
2009/08/10 23:19솔직히 공용 컴퓨터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때는 불안합니다. 대부분 IE 6가 깔려 있거든요. 제가 오페라를 사용한 이후로 바이러스나 악성코드에 감염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악성코드를 유포할 만한 웹사이트에는 접속도 안하지만.) IE 6와 엑티브 X가 보안에 취약하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닌 저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저들은 왜 모를까요.
2009/08/10 14:26전 공공장소 컴이라도 IE 6 깔려 있으면 '이런 쓰레기!' 하면서 무조건 8로 멋대로 업데이트해 버립니다. 뒷수습? 거기까지 제가 신경쓸 건 없죠. 보안상 더 나은 브라우저 깔아 주는 게 뭐 잘못됐습니까? 물론 그런 컴퓨터 대부분이 관리자 권한으로 방치돼 있는 씁쓸한 현실 때문에 그런 짓도 가능한 거죠. 어쨌든, 아는 녀석에게도 그 책 꼭 읽어보라고 반 협박조로 얘기하긴 했는데 그쪽에 대해 아무 생각없는 놈이라 과연 제 말을 들어먹을지 모르겠네요.
2009/08/10 19:10IE6은 몰살시켜야 할 대상입니다.
2009/08/10 23:20맞습니다. 보안에도 취약해 웹표준도 못지켜...유튜브가 그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는데 이젠 국내 업체들도 그런 쓰레기에 대한 지원은 접을 때가 됐습니다. 처음에 반발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언제까지 거기에 발목잡혀 있어야 합니까? 개인적으로 IE6에서만 작동하는 악성코드(가능하다면)라도 나타나서 홀라당 뒤집어 놓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09/08/11 17:23아 진짜 액티브X때문에 돌아 버리겠어요 -_-; 국민은행 갔다가 신한은행가면 같은 액티브엑스 계속 로딩 하는 바람에 아주 난리가 납니다 -_-; 액티브 X는 그 자체가 공해에요.
2009/08/10 18:49더 엽기적인 것은 그 사이트를 벗어나면 열심히 설치해 둔 보안 프로그램도 동작을 멈춰버린다는 겁니다. 정말 누가 생각해낸 발상인지 아주 유치 뽕짝입니다.
2009/08/10 23:21아... 정말 우리나라 웹은 언제쯤 '오픈'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할까요.. 액티브X로 도배되어 있는 은행 사이트나 관공서 사이트를 보면 일단 한숨부터 나옵니다. 언제까지 IE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크롬이나 사파리로 웹 서핑하고 있다가 액티브X 때문에 IE를 켜야 하면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ㅜㅜ
2009/08/11 09:38저도 파폭으로 돌아다니다가 문득 IE Tab을 남발하고 있는 제 자신이 불쌍해 보여요.
2009/08/11 10:00가만 생각해 보면 "웹" 뿐만이 아닌, 확대해 보면, 우리 나라 산업의 전반에 걸친 문제라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듭니다.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어요... 우리나란... 쩝...
2009/08/12 07:42따지고 들면, 결국 우리가 인간이라서 이런 불합리한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
2009/08/12 09:06공감되는 부분이 있네요. 악화라고까지 할 수 는 없지만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은 사회만큼 발전이 더딘 곳은 없습니다. 분명 문제는 문제지요.
2009/09/04 1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