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 담관암, 그리고 아버지

Ring Idea 2007/03/12 00:12 Posted by 그만
드라마 하얀거탑이 끝났다.

솔직히 그만은 이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았다. 후반부에 조금씩 보다가...

주인공의 병명이 그만의 뒤통수를 때린다.

담관암.

간과 쓸개 사이에 간에서 생성된 담즙이 쓸개로 모일 수 있도록 통로 역할을 해주는 담관, 쓸개에서 다시 십이지장으로 가는 길도 담관이다. 그 곳에 암 덩어리가 생기는 병. 이 곳에 암 덩어리가 생기면서 쓸개로 모여 있어야 할 담즙이 역류하면서 간 기능을 저하시키고 황달을 일으킨다.

그리고 환자는 속이 쓰리고 눈에 황달기가 나타난다. 소화가 안 되니 몸 상태 역시 계속 나빠진다.

뭔가 있다고 생각해서 병원 검사를 받아봐도 뚜렷한 수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X-레이 검사에서도 뚜렷한 덩어리를 발견하기도 힘들다. 담관 자체가 작기 때문이다.

문제는 담관암이 걸리고 나서 그 징후를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대부분 문제가 심각한 상태라는 것. 복부를 열어 확인을 해봤자 이미 신체 장기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간에 걸쳐 있는 암덩어리인지라 언제 전이 됐는지 얼마나 전이 됐는지 조차 확인하기 힘들 정도다.

만에 하나 담관을 절재한 뒤 전이가 의심되는 간 일부를 잘라내고 쓸개로 갈 수 있는 담관이 없기 때문에 쓸개 역시 적출해버리면 이후에는 평생 간에서 생성되는 담즙을 바깥으로 빼내야 하는 관을 삽입한 채 살아야 한다. 간과 연결돼 있는 관은 체외로 연결돼 작은 바구니 모양의 담즙 주머니를 항상 달고 다녀야 한다. 물론 감염의 위험이나 여러 가지 정서상의 이유로 목욕탕을 드나들 수 없고 여름철에 겉옷을 벗을 수도 없다.

그래도 이런 경우 장기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그만의 아버지가 그랬다. 2003년 여름. 따로 떨어져 살던 그만에게 아버지께서 전화를 거셨다. 평생 서너번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그만을 만난 자리에서 X-레이 사진을 보여주시더니 '동네 병원 의사가 큰 병원 가보라고 하더라'고 넌지시 말을 건냈다. 당신 딴에는 아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가볍게 검사하고 간단하게 나을 수 있는 병일 것이라 짐작하셨을 것이고 다행히 동네 병원 의사가 재주가 좋아 일찍 뭔가 발견했으리라 그렇게 추측하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 길로 병원에 들어갔고 검사 결과 90% 이상의 담관암으로 추정된다는 의사의 진찰 결과가 있었으며 개복을 할 것인지를 가족들에게 묻는 상황이 됐다.

그때 아버지 연세는 74세. 의사는 개복한 뒤 수술 결과가 좋다고 해도 식사를 자력으로 드실 수도 없는데다 6개월 넘게 생존하기도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내과의는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외과의는 '그래도 개복을 해봐서 희망을 찾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개복 후에는 어떤 처치가 기다리느냐고 묻는 그만에게 의사들은 거의 내장의 절반을 제거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준다. 열고 나서 바로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위장 일부를 절개해 십이지장과 직접 연결시킨 바 있기 때문에 개복 후 십이지장, 소장 일부, 위장 대부분, 췌장, 간 일부를 절재해야 하며 기타 전이 상황에 따라 소장의 1/3을 절개해야 하는 상황까지 있다는 것이었다.

잔인한 그만. 아버지께 스스로 결정을 내리라 말씀드린다.

수술은 없었다.

여러가지 일들을 겪은 후 아버지는 3개월 후 119 구급대의 엠뷸런스 안에서 임종을 맞으신다. 그만은 초점을 잃은 아버지의 눈을 아직도 기억한다.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셨으리라.

임종 일주일 전, 아버지는 당시 누님 댁에 계시던 어머니께 전화해 흐느끼며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였다고 한다. 수없이 많은 세월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식만을 바라보며 사셨고 이미 두 분은 부부로서의 인연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이 사셨다.

그렇게 지난 세월 모두를 어머니께 용서 받고 싶으셨을까. 힘겨운 목소리로 끊임없이 어머니께 '미안하다'를 말씀하셨단다. 아버지를 미워하시던 어머니 역시 모든 것을 용서하신 듯 했다.

화장을 했고 무덤이나 납골도 없이 벽제 화장장에 유골을 뿌렸다.

하얀거탑, 간만에 한국 드라마에서 뇌종양이나 위암, 간암 등 평범한 암이 아닌 그만에게 있어서 특별한 암 이름을 일깨워준 드라마다.

그 안에서 정치를 찾고 사회적 질서, 어쩔 수 없는 상황들, 위계, 직업의식, 사회 정의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만에게 인지된 단어는 '담관암'이다. 그래서 드라마 '하얀거탑'은 그만에게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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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쪼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만님 개인사를 이렇게 오픈해주시다니..
    쏘주가 땡깁니다..

    2007/03/12 00:55
    • 그만  수정/삭제

      간단한 쐬주 한 잔 때문에 쳐들어가려고 해도 너무 바쁘실 것이란 추측 땜에..^^

      2007/03/12 14:46
  2.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2007/03/12 01:03
    • 그만  수정/삭제

      드라마를 보면서 흘리는 눈물이.. 드라마 때문인지 아버지 때문인지.. 분석 좀 해봐야겠습니다.

      2007/03/12 14:48
  3.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2007/03/12 02:57
    • 그만  수정/삭제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들이죠.. 지나고 나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되돌아오게 되니 이 역시 부모님께서 마지막까지 남겨주신 유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2007/03/12 14:49
  4. miriya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속좀 그만 썩여야겠어요..

    2007/03/12 03:48
  5. 학주니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제 아버지께 효도를...

    2007/03/12 10:50
    • 그만  수정/삭제

      살아 계실 때는 일상적으로 잊고 살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지사 아닐까 싶습니다.

      2007/03/12 14:50
  6. valentine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부터 한RSS로 구독중입니다.처음 인사드리네요.

    어제 저역시 하얀거탑을 보며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4년전 어머님을 대장암으로 먼저 보내드리며 암환자들의 고통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후로는 암환자들의 사투와 고통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들을 보면 어머님의 마지막이 떠올라 자리를 피하거나 의도적으로 무던한척 하게 되더군요.

    어제의 장면중 장준혁이 진통제를 바꿔도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다시한번 갈등했었지요.
    '혹시 고통스런 최후를 다 담아 보여주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앞서서 열심히 시청중인 집사람을 두고 방으로 들어갈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행히도 그 후 더이상의 고통스런 모습은 생략하고 바로 유서를 쓰고 임종을 맞이하는 모습으로 마무리 해주어 참 다행이었답니다.

    그만님의 솔직한 아버님이야기를 읽고
    비슷한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남겨진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끼며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누고자 글 남깁니다.

    2007/03/12 12:26
    • 그만  수정/삭제

      아, 감사합니다. 그만에게 이런 포스팅은 이례적이지만 쳐오르는 감정을 포스팅으로 누그러뜨려 봤습니다.

      이렇게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다보니 세상 살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감사합니다.

      2007/03/12 14:51
  7. idea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낯설은 포스팅올립니다.. ^^
    저의 어머니도 폐암말기진단을 받고나서 한달 쯤 후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리고, 시신기증을 하셨고, 돌아가신지 2년이 지난 작년가을에 전남대의대 해부학교실에서 추모식을 했었드랬습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장준혁과 너무 비슷해서 그 상황이 너무 와닿았습니다. 또
    의사가 되려는 학생들이 추모식에서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어머니가 헛된일을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고.. 우리 어머니만 별다른 치료도 못받고 돌아가신게 아니라는 위안도 받고 .. 암튼 그랬습니다.. 저도... 그만님의 아픔이 느껴지네요..

    2007/03/12 16:45
    • 그만  수정/삭제

      그러셨군요. 잃어본 자만의 슬픔이랄까요. 영원한 이별은 금방 잊혀지는듯 싶지만 결국 가슴 속 깊숙히 웅크리고 있을 뿐이죠. 언제 불쑥 일어나 가슴을 헤집을지 아무로 모르죠.. 쓸쓸하지만 맑은 하늘입니다. 감사합니다.

      2007/03/13 13:07
  8. 마그리트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몇년전 아버님이 담관암으로 발병하고 난지 딱 3개월만에 돌아가셨거든요. 마치 제 과거를 보는 듯 너무 비슷해서 놀란마음 추스리며 글을 남깁니다. 장준혁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무시무시한 병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사람들일 겁니다. 오늘 쏘주 한잔 해야겠습니다.

    2007/03/13 09:09
    • 그만  수정/삭제

      담관암을 처음 들었을 때 어찌나 생소하던지요. 의사도 그리 흔한 질병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딱히 다른 이상이 없었고 너무나 건강하셨던 분이라 당황스러움이 더 컸던 기억이 납니다. 보내신 분을 기억하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봅니다.

      2007/03/13 13:10
  9. 구루마루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만님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분들이 동감하시는 것 같네요.

    저희 사촌 형님도 개복 했다 바로 닫고 몇 달 후 돌아가셨죠.
    간암이셨는데...휴.. 그 때 생각하면 착잡한 심정이 되는군요.

    2007/03/13 13:17
    • 그만  수정/삭제

      세상에는 얼마나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은지요. 당시의 황망함을 어떤 것과 비교할까요. 댓글에 감사드리며 안타까운 마음을 나눠봅니다.

      2007/03/14 00:50
  10. 미르~*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법은 다르지만, 저희 아버지도 돌아가셨습니다.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겠지.. 라고 해도...
    TV나 영화에서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어찌나 가슴이 아프고 쓰린지...
    그만님 블로그에서도 제가 느낀것과 비슷한 절절한 아픔이 느껴집니다...
    드라마가 끝났으니, TV보고 가슴아파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2007/03/13 15:13
    • 그만  수정/삭제

      불쑥 튀어나오는 그리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통곡을 하면서 혼자 울다가 나중에야 왜 그리 눈물이 났는지를 생각날 때도 있죠. 어쩌면 슬프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기폭제로 삼았는지도 모르죠.

      2007/03/14 00:51
  11. 마루날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소에 그만님의 글을 RSS로 보면서,
    언제나 되어야 그만님처럼 글을 쓸 수 있을까
    부러워했습니다.

    저는 하야거탑 초반을 좀 보다가 와이프가 마지막회라는
    얘기를 해주길래 앉아서 보았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으로 담관암이라는 것을 들었는데요

    그만님의 글을 보면서
    놀라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2007/03/13 15:31
    • 그만  수정/삭제

      아마도 제가 태어나서 담관암이란 것이 제게 의미가 없었다면 하얀거탑 조차 그만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는 드라마에 불과했겠죠. 꽤 된 내용이지만 많은 분들이 이렇게 공감해주실줄은 더 몰랐네요. 아픈 기억이 오히려 생면부지의 많은 분들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경우가 됐군요. 감사합니다.

      2007/03/14 00:54
  12. CN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버지가 담도암입니다.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판정을 받은 후 1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요즘 기력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데 집에서 두번 정도 쓰러져서 세브란스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2007/03/13 18:13
    • 그만  수정/삭제

      본문에서 많은 것을 생략했지만... 아.. 그 과정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당당하던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올줄 모르고 무섭게 쏘아부치던 그 눈빛도 희미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상 모든 것의 위에 서 있을 것 같았던 아버지의 약해지는 과정은 또 다른 아픔이었습니다.

      2007/03/14 00:55
  13. Reidin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로 4일 전에 저희 아버지께서 대장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4년 동안 투병하셨죠) 암으로 돌아가셨다니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네요. 암이라는 병이 정말 무서운 병인 것 같습니다.

    관련글 트랙백 걸어둡니다.

    2007/03/13 21:43
    • 그만  수정/삭제

      안타깝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트랙백 감사드립니다. 4년 동안 받았던 모든 고통이 그저 흩어 사라지는 연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2007/03/1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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